머리를 기르는 그녀
머리를 기르는 그녀
  • 제주일보
  • 승인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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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생머리이다. 염색도 하지 않았다. 머리핀으로 단정히 여미어진 그녀의 머리는 등을 타고 내려와 허리춤까지 이를 지경이다. 저렇게 긴 머리를 관리하려면 신경이 많이 쓰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고 말리고 빗질하는 것도 짧은 머리보다 더 손이 가고, 관리가 잘 안되면 끝이 갈라지고 푸석거리기도 한다. 대학시절 커트가 유행일 때도 긴 머리를 고집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그 친구를 떠올리면 어깨 아래로 늘어뜨린 긴 머리가 기억난다. 대학 때 머리를 길러 멋을 부려보려 했지만, 성격상 어깨를 넘지 못했다. 머리 기르는 것도 인내가 필요함을 그때 알았다.

자주 만나는 그녀도 머리 기르는 것이 개인의 취향이겠거니 생각했다. 긴 머리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머리를 기르는 목적이 있었다. 머리를 길러서 소아암 센터에 기증하기 위해서란다. 기증된 머리카락은 소아암 환자의 가발을 만드는 데 쓰인다. 머리카락을 기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5센티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파마나 염색이 아닌 천연 그대로의 머리카락이어야 한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매사에 열심인 그녀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배시시 웃는 모습이 더 숭고하게 느껴졌다.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보이는 상대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 바로 이게 행동하는 사랑이다. 그녀는 하루, 한 달, 일년, 이년, , 날 수로 세면 천백일이 넘는 동안, 머리를 손질할 때마다 소아암 환자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길렀을 것이다. 방사선치료로 고통 받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며 머리카락을 소중히 관리하였음이다.

그녀가 어느 날 머리를 싹둑 자른 것이다. 3년여의 사랑이 상자에 담겨 소아암환자들에게 전해졌다.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99일은 장기기증의 날이다. 뇌사 시 한 사람의 장기기증으로 9명의 생명(심장, 간장, 신장 2, 폐장 2, 췌장, 각막 2개 기증)을 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장기를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내어 놓는 이들이야말로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 한국 프로레슬링 선수였던 이왕표가 세상을 떠났는데, 5년 전에 쓴 유서가 회자되고 있다. ‘차후 불의의 사고로 사망시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각막은 이동우에게 기증하고 싶다. 2013814.’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암투병 중에도 다문화 가정,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활동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익명의 누군가를 위해 봉사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오래 전 딸의 권유로 딸과 함께 딱 두 번 헌혈을 한 적이 있다. 그래도 그 피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리라고 위안 삼는다. 한 달에 한 번 복지시설을 방문하는 일은 미약하게나마 봉사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작은 힘이 모여 큰 변화를 가져온다. 가발 하나 만들려면 200명의 머리카락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카락이 모여 가발하나를 완성시키듯이 작은 실천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게 만든다. 한 사람이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된다면, 세상 어느 구석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빛, 사랑이라는 손수건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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