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개 돌계단의 고통 넘자 깨달음 얻은 자와 만나다
614개 돌계단의 고통 넘자 깨달음 얻은 자와 만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9.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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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50)삶의 원초적 모습을 지닌 남인도를 찾아서(9)-스라바나벨라골라
차문다라야 사원으로 가기 위해 빈드야기리 바위산을 오르는 행렬. 614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차문다라야 사원으로 가기 위해 빈드야기리 바위산을 오르는 행렬. 614개의 돌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찰루키아 왕조와 바다미 석굴 답사를 마치고 저녁 기차를 타고 다시 호이살라 왕조의 힌두 사원이 있다는 할레비드로 향했습니다.

밤새 열차에서 잠을 자고 깨어보니 드넓은 남인도 평야지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인도 농촌마을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겹게 보입니다.

가끔 외국여행을 갔을 때 야간열차를 타면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된답니다. 특히 기차가 없는 제주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어느 새 목적지에 도착, 바쁘게 아침을 먹고 오늘 첫 답사지인 남인도 최대 자이나교 성지가 있다는 스라바나벨라골라로 향했습니다.

작은 마을인 이곳에는 커다란 호수를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는 빈드야기리와 찬드라기리라는 바위산이 있군요.

마을 입구부터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선 것을 보니 무슨 행사가 있나했더니 마침 요즘 자이나교 축제가 열리고 있어 인도 각지에서 온 신도와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답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가마를 타고 빈드야기리 바위산을 오르고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 가마를 타고 빈드야기리 바위산을 오르고 있다.

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자 큰 바위산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오르고 있네요. 빈드야기리 언덕 꼭대기에는 바후발리 석상(‘고마테스와라라고도 불림)이 있는 차문다라야 사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어 저렇게 길게 줄이 잇고 있답니다.

자이나교 사원을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그나마 양말은 신어도 된다는군요. 얼마나 사람이 많이 다녔으면 바위를 깎아 만든 614개 계단이 번들거립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돌리라 부르는 가마를 타서 오르고, 나이가 많은 할머니도 가파른 바위산을 위험스럽게 오르고 있습니다. 신들의 나라 인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가파른 바위산을 다 올랐지만 사원 앞에는 신도들이 꽉 들어차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바후발리 석상 앞에서 한 신도가 춤을 추고 있다.
바후발리 석상 앞에서 한 신도가 춤을 추고 있다.

행사 때문인지 철 구조물이 설치돼 있고 그 가운데 거대한 바후발리 석상이 서 있군요. 이 석상을 중심으로 많은 신도들이 모여앉아 어떤 신도들은 춤을 추는가 하면, 석상에 물을 뿌리기 위해 석상의 머리 부위까지 올라간 신도들도 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바후발리는 10세기쯤 리샤바 왕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제국의 왕위를 놓고 형제인 바라타와 다툼을 벌였고 승리의 순간 환멸을 느껴 세속의 왕위를 바라타에게 넘기고 숲속에 은둔했다고 합니다. 바후발리는 이후 두 발을 모으고 양 팔을 붙인 채 서 있는 카요트사르가(Kayotsarga) 자세로 명상에 잠겼다가 깨달음을 얻어 자이나교의 1대 티탕기르(Tirtangir)가 됐다고 합니다.

이곳 사원의 석상은 바후발리가 명상을 했던 그 자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981년 강가왕조의 왕의 명령을 받은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거대한 화강암으로 조각됐고 그 높이가 17.6m에 달합니다. 한 덩어리 돌로 만들어진 석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네요.

바후발리 석상은 나신상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석상 주변에서는 자이나교의 불살생, 무소유 교리에 따른 나체 수행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해 실제로 마주치면 어쩌나 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이나교 수행자들은 벌거벗은 채 공작 깃털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길거리를 쓸고 다닌다고 합니다. 혹시 작은 곤충이라도 밟아 죽일지 몰라서랍니다. 그만큼 철저히 불살생과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다는군요.

석상 전신을 촬영하려고 어렵게 가장 높은 꼭대기까지 올랐으나 경비원들이 신도가 아니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군요.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한 경비원이 카메라를 보더니 사진 찍을 거냐고 묻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들어가라네요.

한 쪽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쭉 모여 앉아있는데 한 카메라맨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잠시 기다리면 위에서 물을 뿌리니 그 때 촬영하라고 자세한 설명까지 해 줍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말이 통하지 않아 연신 고개만 숙였답니다.

이렇게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할지, 또 무엇을 언제 찍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경우가 많지요. 특히 종교행사는 그 내용을 모르면 취재가 매우 어려운데 외국인이라고 자리와 촬영의 순간까지 안내해 준 그분의 모습은 인도 여행 내내 떠올랐답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자이나교 성지인 차문다라야 사원에 세워진 바후발리 석상. 높이 17.6m로 한 덩어리 돌로 만들어진 석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자이나교 성지인 차문다라야 사원에 세워진 바후발리 석상. 높이 17.6m로 한 덩어리 돌로 만들어진 석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위에 올라와 보니 바후발리 석상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네요. 누가 어깨를 툭 치며 저쪽을 보라는군요. 석상 머리 위에 올라간 신도들이 무엇인가를 쏟기 시작합니다. 물인 것 같기도 하고 꽃들도 함께 쏟아지자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행사를 축하합니다.

스라바나벨라골라에서는 12년마다 이 마하마스타카비쉐카(Mahamastakabhisheka)라는 자이나교 축제를 여는데 우유와 성수, 샤프란, 금화 등으로 바후발리 석상을 씻어낸다고 합니다. 이 축제가 열릴 때면 수천명의 자이나교 신도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는군요.

처음 보는 자이나교 축제라서 좀 더 기다리면 좋은 사진을 찍을 것 같아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데 가이드가 다음 행선지로 가야 한다며 재촉하네요. 아쉬움을 남기고 위험한 바위계단을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습니다.

축제가 계속되고 있어 수많은 신도들이 한낮인데도 바위산 계단을 줄을 잇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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