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암의 빈 의자
수도암의 빈 의자
  • 제주일보
  • 승인 2018.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미선 수필가

통도사의 말사 암자를 찾았다. 성지순례 때마다 통도사는 여러 번 참배 했으나 주변 암자를 찾아 올라가기는 처음이다. 통도사 말사에는 스무 개 정도의 암자들이 있다. 올라갈 때마다 솔바람이 불고 댓잎이 부딪히는 소리는 교향악으로 들린다. 도자대장경판을 안치한 서운암 입구에 들어서자 시화전 오십여 편이 빨래 줄의 옷처럼 정겹다.

발걸음을 재촉하니 극락암이다. 붉은 소나무가 시옷자 형으로 일주문을 만들고 있다. 다복솔()이다. 복을 많이 불러오게 하는 듯 여러 줄기가 퍼지게 늘어서며 운치를 더한다. ‘큰 빛의 집이라는 대웅전 한글 편액이 불자들을 사후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하다. 대웅전에서 삼배 올리는 기도만으로도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듯하다.

극락암에서 나오자 갈림 길이다. 계속 올라가도 끝이 없을 듯해 사잇길로 무작정 내려왔다. 이정표에 조그만 화살표로 수도암이라고 쓰여 있다. 표시를 따라 걸었다. 말사의 암자 중에서도 여기는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겨우 네 대 정도만 가능한 암자이다.

발길이 머물렀다. 마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세월을 말해주는 듯 높은 키를 마다않고 서 있다. 나무 아래에는 커다란 양푼에 은행 열매가 가득하다. 공양주보살이 주워 담았는지 발효가 되어 가는 냄새를 품어 안고 소복이 담겨 있다. 살구만한 열매가 속 열매를 보호하느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냄새로 겉을 싸고 있어도 양푼 안에서는 황금이다. 얼마 있지 않아 겉껍질이 녹아지고 하얀 속껍질을 드러내며 햇볕에 말려지겠지. 열매는 공양주의 손질을 거치면서 겨울에는 스님들의 기운을 돋우어 줄 양식으로 거듭나게 되리라.

수도암일주문 앞 아름드리 장신의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절벽처럼 높은 곳에 서 있는 소나무가 경이롭다. 들어갈 때 보지 못 했던 의자가 돌아서니 눈에 띈다. 밑둥치에는 소나무 세 그루를 의지하여 안전장치로 데크를 깔고 쉼터처럼 만들어져 있다. ‘수도암스님의 배려인지 지친 걸음 오가며 쉴 수 있게 나무의자가 네 개나 있다. 모든이여 나에게 기대라고 손짓한다. 지대방 역할을 하는가. 명상에 잠겨도 좋은 공간이다.

빈 의자에 앉았다. 편안하다. 바람이 아래에서 불어오니 솔 향에 취하고만다. 갈색 가사를 걸치고 조그만 체구의 스님이 지나간다. 나는 삼촌스님이 환생한 듯 깜짝 놀라 일어서다 멈추었다. 스님의 뒷모습에서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고모할머니는 삼촌을 동진출가시키려고 자주 독경하게 하였다. 삼촌의 독경소리가 중생을 제도하는 듯 듣기 좋았다. 삼촌은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통도사에서 공부하였다. 말사인 이곳 어느 암자에서 이름난 수도승이 되는 줄 알았다. 젊은 나이에 지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 큰 스님의 상좌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는데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삼촌은 내 앞의 빈 의자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유난히도 나를 반긴다. 자리가 꽉찬 기분이다. 새들이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법단에 둘러앉아 법문하는 소리로 내 머리 위를 맴돈다. 먼 길 찾아와 주었다고 쉬어가라며 인사하는 듯하다. 거북등처럼 깊게 패인 소나무 등을 잡았다. 테크 아래를 내려다보니 깊은 골짜기가 딴 세상이다. 여기가 바로 서방정토극락일까.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