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과 후손 연결 고리...자신의 근원 돌아봐
조상과 후손 연결 고리...자신의 근원 돌아봐
  • 김현종 기자
  • 승인 2018.08.31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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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돌아온 벌초의 계절
조상 음덕 기리며 혈육의 정을 나누고 공동체 환기
핵가족화 등으로 퇴색 일로...소중한 의미는 살려야

어느덧 벌초(伐草)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 추석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이번 주말부터 도내 중산간을 비롯한 들녘 곳곳마다 벌초객들의 행렬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벌초는 조상 묘에 자란 풀을 베어내며 음덕을 기리는 풍습으로, 농업을 주된 업으로 살았던 예로부터 스스로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미풍양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벌초는 제주의 끈끈하고 결속력 있는 친족 공동체 사회를 이어온 문화 자산이었지만 현대화와 핵가족화 등 급변하는 시대 흐름과 맞물려 시나브로 변화되고 있다.

제주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제주에서는 소분(掃墳)’이라고도 부르는 벌초 풍습과 벌초방학 등에서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찾을 수 있다.

벌초는 보통 음력 8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 사이에 이뤄진다. 그 중에서도 8월 초하루에 문중 친척들이 모여 선대 조상 묘를 벌초하는 모둠 벌초에는 집안 내 성인 남자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참여하도록 해왔다.

이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육지나 해외에 나가있는 친족들까지 모둠 벌초에 맞춰 고향을 찾기도 한다. 추석 당일에 내려오지 못하더라도 모둠 벌초에는 참여해야 한다는 풍습이 자리잡은 데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모둠 벌초는 혈연관계를 확인하면서 친족 공동체인 문중의 결속을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 이는 척박한 땅과 거센 바다에서 함께 도와가며 일하는 제주의 독특한 수눌음 및 공동체 정신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다.

모둠 벌초와 연관돼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벌초 문화 중의 하나가 벌초방학이었다. 학교마다 효행사상 고취 차원에서 음력 8월 초하루에 학생들이 조상의 묘소를 찾아 벌초를 할 수 있도록 임시 휴교일로 정한 게 벌초방학이다.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도내 모든 학교에서 시행됐으나 2010년 이후에는 벌초를 주말이나 휴일에 하는 등 세태 변화와 맞물려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달라지는 벌초 문화=현대화와 핵가족화,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 변화상과 시나브로 희미해져가는 공동체 문화 등과 맞물려 벌초 풍속도도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바빠진 일상생활 속에서 벌초 대행 서비스가 많아졌다는 게 크게 달라진 벌초 문화 중 하나다. 위성항법장치(GPS) 등을 이용한 벌초 대행 서비스는 도내 13개 지역농협과 산림조합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고 벌초할 후손들이 없는 가정에서 이용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등 장묘문화 쇠퇴와 화장문화 확산에 따른 세태 변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상의 묘를 이장해 한곳에 모시는 가족묘지가 많아지는 가운데 봉분을 쌓지 않거나 납골당으로 모시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도내 화장률은 201154.8%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매장을 앞지른데 이어 지난해에는 69.9%까지 상승, 70%대에 육박하면서 달라진 세태 변화를 입증하고 있다.

여기에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 변화와 벌초의 의미와 풍습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가 다른 점 등도 벌초 풍속도를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도 벌초는 아직까지도 형제·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면서 정을 나누고 공동체를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풍속이다. 또 조상과 후손을 연결하는 고리이기도 하다.

벌초문화는 앞으로도 달라지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들겠지만 자신들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근원 찾기는 변하지 않는 근본이라 할 수 있다. 벌초를 계기로 한번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조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면 그게 바로 영원한 벌초의 의미가 아닐까.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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