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덮는 ‘허수아비’
버스를 덮는 ‘허수아비’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8.3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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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하다가 맞닥뜨리는 일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하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그런 의문은 자신만 느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갖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동일 상황에 대한 문제의 공유다.

이 경우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그냥 눈감고 지나쳐야 할지를 놓고 적잖이 고민한다. 자칫 잘못했다간 뒷감당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흔하게 나타나는 논법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하기 쉽도록 과장하거나 왜곡함으로써 공정한 논의 자체를 막는 방법이다.

논쟁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약점이 많은 허수아비 주장으로 슬쩍 바꿔놓은 뒤 엉터리라고 선동하는 수법이다. 이런 논법을 부도덕한 논리적 오류의 하나다. 당장 눈앞의 싸움에서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모두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어린이가 혼자서 길을 가면 안 된다”는 말에 “그럼 아이를 하루 종일 집안에 가두어 두란 말이냐”고 맞받아치는 것이다.

제주도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이 1년을 맞았다. 올 2월 국토교통부 대중교통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제주는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제주도 올해 1475억원 투입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실적은 수치상으로 나온다.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 10개월 간 대중교통 이용객은 17만452명으로, 그 이전 같은 기간 15만3000명보다 11.4% 증가했다.

제주도는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함께 버스 327대와 운전원 953명을 늘렸다. 버스 노선이 다양화하고, 운행횟수 또한 크게 늘었다.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도심 교통흐름을 빠르게 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층의 이동을 돕게 하는 서민의 발을 뛰어넘어 도민의 중추 이동수단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분명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제주도는 올해 대중교통 분야에 1475억원이라는 거대예산을 투입했다. 이 가운데 민영버스 운영에 투입되는 준공영제 관련 예산은 965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면서 이런저런 소문과 의문이 이어진다. 예산집행의 적정성 문제로, 합리적 의심이 나오는 게 당연할 수 있다.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은 열흘 전 기자간담회에서 “제주도 재정추계를 보면 내년부터 지방세 수입이 정체 또는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교통체계 개편 관련 예산으로 1000억원이상 소요되고 있다”며“이 같은 경직성 경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예산집행 효율성 등 살펴봐야

버스 준공영제는 세계적 추세임이 분명하다.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상당수 지자체가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전국 지자체의 공통고민은 ‘돈 먹는 하마’라는 일반의 불편한 시선을 털어내는 일이다.

시행 1년을 맞은 제주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그간의 공과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점검해야 할 때를 맞았다. 특히 민간에 대한 예산 지원의 적정성을 살펴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물론 행정 내부적으로 덮고 싶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행정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30년만의 대개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체계가 도민들의 건강하고 신뢰 받는 발로 자리를 굳히는 ‘문제의 검증’이라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은 길이다. 합리적 의심은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국토부의 대중교통 만족도 조사결과 전국 1위를 차지했으며 대중교통 선진 도시인 서울시도 버스 준공영제를 하는데, 그렇다면 국토부 조사도 믿지 말고 서울시 정책도 따져야 하느냐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다. 나아가 발목잡기라고까지 몰아붙이면 말문이 막힌다.

그렇다면 시행과정의 잘못된 부분을 허수아비를 빌려 덮으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따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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