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열풍과 ‘느끼는 관광’
인문학 열풍과 ‘느끼는 관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2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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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 트렌드를 말하자면 단연 인문학일 것이다.

TV에서는 역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철학 토론을 진행하는 강좌 역시 온·오프라인에서 성황리 운영 중이다.

신문에서도 경쟁적으로 인문학 특집을 내보내면서 공익성과 구독률,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자기획이라 자평한다.

바야흐로 인문학의 시대라 할 만하다. 어디를 가나 저마다 인문학 도시를 표방하고 어떤 곳은 도시 정책의 최우선으로 내세운다. 개발 논리로 표를 모으던 시대가 가고, 물질의 삶을 넘어 정신의 삶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시대가 도래한 결과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우리 사회 전반에 형성되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못내 고맙고 또 뿌듯하다. 불과 몇 년 전 인문학 홀대에 대한 우려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나타나던 때를 떠올리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인문학 열풍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생존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지, 그리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들 인생의 정답을 알고 싶어하지만 사실 인문학은 정답을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다. 성찰을 통해 내면에서 일어난 의문을 스스로에게 묻는 학문이다.

답을 구하는 학문, 즉 노하우(Know-How)를 알려주는 학문을 사회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20세기는 다양한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한 분투의 시기였다.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노하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노하우, 돈을 벌기 위한 노하우 등등.

반면 인문학은 노와이(Know-Why)의 학문이다. 섣불리 답을 구하기보다 삶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사색의 여정이다.

인문학은 또한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역사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그런 까닭이다. 다른 시각, 다른 관점을 찾는 자세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살 뿐, 정답이라 내세울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주를 찾는 여행객들이 자연과 생태관광에서 인문학으로 관광패턴이 달라진 것도 시대의 트렌드다. 제주시 소재 공영관광지 가운데 올 상반기 입장객 수가 지난해보다 늘어난 6곳 중 5곳이 역사 유적지 또는 박물관이었다.

항몽유적지의 올 상반기 입장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했으며, 제주목관아지와 삼양선사유적지 입장객도 지난해 동기보다 각각 6%, 7% 늘었다.

이 밖에 국립제주박물관의 상반기 입장객이 73% 증가했으며, 해녀박물관의 입장객도 지난해 동기보다 18% 늘었다.

서귀포시도 마찬가지. 제주추사관의 입장객이 지난해보다 111%나 급증했으며, 이중섭미술관과 감귤박물관의 입장객도 지난해보다 각각 29%, 64% 늘었다.

반면 한라산, 만장굴, 성산일출봉 등 전통 자연관광지는 입장객이 줄고 있다.

올 상반기 한라산국립공원과 만장굴의 입장객 수는 지난해보다 각각 9%, 8% 줄었다. 성산일출봉은 1분기 기준 입장객이 지난해보다 35% 감소했으며, 천지연폭포도 29% 줄었다.

인문학 열풍이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이듯이 지구촌의 관광 트렌드도 보고 즐기는 관광에서 느끼는 관광으로 달라졌다. 우리 제주 관광도 역사 인문학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느끼는 관광을 만드는 작업을 이제 피할 수 없게 됐다.

예를 들어 6·25 전쟁과 피난민 애환의 역사를 살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서귀포 이중섭거리의 언덕에서 그가 일본에 간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불렀다는 노래 사우(思友)’- “봄의 고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 언덕 위로 백합 필 적에/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가 울려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우리 역사는 관광자원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관광자원이기에 앞서 제주도민들에겐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필수 인문(人文) 자원이다. 우리의 역사가 여행객에겐 관광, 제주 사람들에겐 향토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환기시키는 이 두 가지 역할이 조화를 이뤘으면 좋겠다.

그런 인문 정신을 통해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해나가자는 희망과 함께.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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