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최고 스테디셀러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최고 스테디셀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2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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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1976년)
무소유(범우사,1999) 3판 표지(판화가 이철수 작품)

지난 5월 어느 날 화사한 옷차림의 관광객 두 분이 우리 책방을 찾았다. 그 중 한 사람은 어디선가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들은 한 동안 책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책 몇 권을 골라서 내게 가져왔다.

그제야 얘기를 한다. 전에 소개한 바 있는 ‘교수님의 숨결까지 느껴지는 필기를 한다’는 그 대학 동창의 친동생이란다. 많이 닮았다. 그래서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었구나 싶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보니 그녀가 고른 책들이 좀 이채롭다. 한 스님이 쓴 책이 네 종류나 있었다. 교회를 열심히 나가는 독실한 신자 집안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조금은 의외였지만 그 스님이 스님이신지라….

한 종교의 성직자가 쓴 책이 그 종교와 관계없이 다양한 독자층에게서 사랑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스님은 달랐다. 외려 다른 신앙을 가진 독자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법정스님의 위트가 돋보이는 서예작품(소장가 이기정 선생님 소장).

그 스님이 바로 법정(法頂 1932~2010)이다.

‘산방한담’(샘터, 1983), ‘아름다운 마무리’(문학의숲, 2008) 등 스님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서도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은 1976년 범우사에서 초판이 발행된 ‘무소유(無所有)’이다.

‘무소유’는 스님이 평생을 걸쳐 실현하고자 했던 무소유의 정신을 온전히 담은 책이다. 스님이 입적하실 때 남긴 ‘그 동안 풀어 논 말 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 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달라는 유언으로 절판될 때까지 모두 184쇄를 거듭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이 속세를 사는 속인들의 소유욕을 자극시켰고, 나중에는 1993년 간행된 증보판(39쇄)이 1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미 300여 만권이나 간행되어 세상에 널리 유통되는 책이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소유를 설파한 스님의 책이 되려 그 책을 소유하려는 사람의 욕심을 자극한 결과가 된 것이다.

당시 필자가 자주 다니던 헌책방의 주인장들은 ‘초판도 아니고, 문고판인 책을 어떻게 그런 가격에 파냐’며 모두 혀를 찼었다. 그 때는 책을 읽기만 하는 독자였던 내가 헌책을 사고 파는 헌책방 주인이 된 지금도 이 책을 찾는 분들이 여전하다.

그냥 한 번 읽어 보려는 분들도 있고, 투자를 목적으로 사두려는 분들도 있다. 한 권씩 사는 분들이야 그냥 팔면 되지만, 투자 목적으로 사는 분들께는 꼭 이 말씀을 드린다. ‘이미 300만 권이 넘게 출간된 책이라, 초판이거나 서명본이 아니면 투자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님도 스님의 이 ‘무소유’를 감명 깊게 읽고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라고 하셨다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은 책을 갖고 싶은 건 당연한 거고 뭐라할 바가 아니다.

다만 지난 달에 입수된 초판에 이어서 얼마전 스님이 입적하시기 바로 전날 출판된 ‘무소유’가 서점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필자의 기쁨이 순수한 애독자의 그것인 지, 아니면 장사꾼의 그것인 지….

경계가 모호한 지금의 내 모습이 슬퍼지는 요즈음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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