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산 아래서 잠을 자서일까. 간밤 카일라스 산을 훨훨 날아다니는 희한한 꿈을 꿨다. 멀리 디라북 사원 앞에서 마치 우주를 유영하듯 떠올라 정상에서 녹아내리는 계곡 물줄기를 따라 한없이 올랐다. 정상 암벽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또 그 위를 하염없이 날아다녔다. 얼마나 신나던지 더 오래 꿈을 꾸고 싶었지만 “해가 뜨기 시작했으니 빨리 일어나라”는 소리에 깨고 말았다.
카메라를 들고 카일라스 일출을 보기 위해 산등성이를 올랐으나 구름에 가려 일출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간밤 꿈에서 떠돌던 그 현장을 다시 보는 것 같아 한참 동안 정상을 바라봤다.
오늘 오르는 코스가 카일라스 일주 중 가장 어렵다고 한다. ‘자신이 죽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한다’는 돌마라 고개(5668m)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고개를 내려가면 모든 존재가 새로 태어난다고 한다.
카일라스 동북면을 바라보며 천장대와 업경대의 험준한 길을 천천히 걷는데 앞에 한 티벳 여인이 ‘오체투지’를 하며 오르고 있다. 그냥 걷기도 힘든 바위투성이 길을 오체투지로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이 여인이 찾는 부처는 어디에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길 양쪽 바위에는 순례자들이 옷이나 머리카락, 모자, 신발 등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는 것들을 신성한 산에 바치고 있다고 한다.
경사가 심하고 암석지대라 얼마 못 가서 쉬기를 몇 차례, 앞서 가던 인도 팀이 천천히 가자고 손짓한다. 어제 카일라스 베이스캠프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가파른 돌무더기 언덕, 수많은 타르초가 온 산을 덮고 있다. 타르초 사이를 돌고 돌아 올라서니 이곳이 바로 해발 5668m의 돌마라 고개다. 거대한 바위산들이 우뚝우뚝 솟아있는 이 험준한 곳에 순례자들은 직접 가져온 타르초를 걸며 자신의 업보를 사(赦)해주십사 빌고 또 빌어본다. 티벳과 인도, 네팔, 그리고 멀리 유럽과 미국에서 온 순례자들도 많다. 타르초를 걸고 과자와 각종 간식을 나눠주며 돌마라 고개를 오른 것을 축하하고 나머지 여정도 무사히 갈 것을 서로 기원해준다.
돌마라 고개를 넘자 순례자들의 심성을 깨끗이 씻어준다는 에메랄드빛 ‘자비의 호수’가 눈 아래 펼쳐진다. 꽁꽁 얼어서 에메랄드빛은 볼 수 없지만 깊은 화구호인 듯하다. 돌마라 고개를 내려서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계곡을 따라 물줄기가 흐른다. 이 물줄기가 아시아 주요 4대 강의 근원이 된다. 인더스와 갠지스, 카르날리, 브라마푸트라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 카일라스다.
2박3일 동안 카일라스 일주를 하며 인생 최대의 희망을 얻은 기분이다. 물론 고행을 해 본 자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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