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첫 대표적 전업 여의사 '색자니.효덕' 조선초 명의로 활동
제주 첫 대표적 전업 여의사 '색자니.효덕' 조선초 명의로 활동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2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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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주의 첫 의사와 여의사(3)
조선후기 이후 내의원과 혜민서 소속 의녀의 복식(사진 위·제주한라대교수 박인순 제공)과 (사진 아래 왼쪽부터)정의현 색자니의 의술활동과 세종의 부름 부분(‘세종실록’ 권50, 세종 12년 12월 23일조), 제주효덕의 의술과 왕의 부름 및 포상 부분(‘세종실록’권52, 세종 13년 5월 6일조), 제주의 여의사 가씨 등의 의료활동 관련 기록(이륙 저 ‘청파극담 수록).
조선후기 이후 내의원과 혜민서 소속 의녀의 복식(사진 위·제주한라대교수 박인순 제공)과 (사진 아래 왼쪽부터)정의현 색자니의 의술활동과 세종의 부름 부분(‘세종실록’ 권50, 세종 12년 12월 23일조), 제주효덕의 의술과 왕의 부름 및 포상 부분(‘세종실록’권52, 세종 13년 5월 6일조), 제주의 여의사 가씨 등의 의료활동 관련 기록(이륙 저 ‘청파극담 수록).

제주의 첫 의사는 ‘삼승할망’으로 볼 수 있거니와, 고대로부터 ‘치병신’이 좌정한다는 ‘일뤳당’도 ‘허물할망당’으로 일컬어지곤 했다. 이들은 모두 여성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의(巫醫)와 연계되는 존재였다. 그러면, 가장 먼저 제주의 여성으로서 의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했던 전업의사, 곧 여의사의 면면은 어떠할까.

이들 제주 여의사의 존재는 조선시대부터 확인된다. 이때부터 제주 여의사의 이름과 의료활동이 기록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색자니(塞自尼), 효덕(孝德), 장덕(張德), 귀금(貴今), 가씨(加氏)로서 조선전기만 보더라도 5명에 달한다. 이들 외에도 같은 시기에 무명씨의 여의사도 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이 드러난 5명의 제주 여의사 중 색자니가 가장 앞선 시기에 확인된다. 그녀는 세종 12년(1430) ‘눈에 들어 있는 벌레를 끄집어냈다(能取眼中蟲).’고 명성이 높아졌다. 그래서 임금이 제주 안무사, 곧 제주목사에게 말을 제공하고 남편 및 자녀와 함께 상경토록 하라는 명령서를 내렸던 것이다. 특히 다른 여의사들이 제주목 출신이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정의현에 살면서 의술을 펼쳤다. 이로써 제주는 도심지뿐만 아니라 제주의 곳곳에서도 의사가 활동했던 만큼, 그 수도 꽤 많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색자니 외에 효덕, 가씨, 장덕도 세종대(1418~1450년)부터 의료활동에 나섰음이 확인된다. 효덕은 색자니처럼 임금의 부름도 받았다. 그녀는 세종 13년(1431) ‘눈의 이물질, 수면 중 이갈이(?齒·교치), 목구멍의 벌레(喉蟲·후충)를 제거한다.’는 명성으로 임금에게 은밀히 불려가 쌀과 콩 및 소금·간장 등도 내리받았던 것이다.

색자니와 효덕은 각각 눈과 목구멍이란 신체부위에 들어있는 이물질을 끄집어내거나, 솎아내는 의술로서 명성이 높아졌고, 그 때문에 임금의 부름도 받았다. 이들 벌레는 양의학(洋醫學)에서 ‘스피로메트라(Spirometra)’라고 일컫는 기생충 종의 애벌레, 곧 유충(幼蟲) 혹은 기생충이었을 것 같다. 스피로메트라는 뱀ㆍ개구리의 생식, 또는 돼지고기를 날로 먹었을 사람에게 발견된다.

이 밖에 벌레가 있는 시냇물을 떠먹어도 걸릴 수 있다. 기생충의 경우는 대체로 음식물을 통해 감염되나, 기근으로 인해 초근목피로 연명할 때 더 쉽게 몸 안으로 들어와 증식된다.

스피로메트라와 기생충의 감염은 당시 제주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제주 사람이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듯 싶다. 이 가운데 스피로메트라 감염의 치료는 유충 적출밖에 없다고 하는데, 색자니와 효덕은 놀라울 정도의 적출 수술을 해냈던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제주 사람의 스피로메트라 감염이 다반사였고, 제주의 의사도 스피로메트라 적출과 관련해서는 상당한 경험과 그에 따른 노하우를 축척할 수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한 듯싶다. 이 사실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적용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가운데 색자니와 효덕은 제주의 의사들 사이에서 유충의 적출시술이 가장 뛰어났다고 하겠다.

제주의 여의사는 치아에서 벌레를 제거하는 데도 놀라운 솜씨를 지녔다. 그녀도 역시 세종대 활동한 가씨였다. 그 의술활동은 다음의 기록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 부분을 번역·전재하면 ‘내가 소싯적에 제주에 사는 가씨(加氏)란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사족(士族)의 집에 드나들면서 치아의 벌레(齒·치충)을 잡아내는 데 효험이 있었다. 그 후 같은 제주의 계집종 장덕(張德)은 가씨에게 술법을 배웠다. 치통이나 눈과 코에 병이 있으면 수없이 벌레를 잡아냈는데 병도 조금씩 나았다. 대낮에 침으로 근육 내 핏줄을 찔러 벌레를 끄집어내면 벌레는 꿈틀거리면서 며칠이 가도 죽지 않았다. 사람들이 삥 둘러서서 봤으나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일찍이 대궐에 들어가 치아를 치료해 효험이 있었는데, 혜민서(惠民署)의 여의(女醫)로 삼고, 나이 어린 여의 몇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기술을 배우게 했으나 끝내 전해받은 사람이 없었다. 다만 사비(私婢) 가운데 옥매(玉梅)라는 자가 있고, 그 집에서 품을 팔았다. 장덕이 죽자 옥매가 그 기술을 모두 습득했다 하고, 또한 혜민서에 소속케 했다. 그 집이 나와 이웃이어서 그 하는 걸 보건대 정말 홀리게 하는 기술이었다. 내 일찍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침(針)을 삼키고 콧구멍으로 나오게 하는 일이라던가, 목석의 작은 어린아이가 꾸짖음에 따라 스스로 뛰게 하는 자도 있었고,  이외 비둘기를 키워 불을 사르고 구멍으로 날아가게 하는 등의 일로 모두 눈과 귀를 놀라게 했다. 아마 그 유(類)일 듯 싶다.’라 되어 있다.

이들 내용은 이륙(李陸)이 지은 ‘청파극담(靑坡劇談)’에 실려 있다. 그의 생몰연대는 세종 20(1438)~연산군 4년(4)이거니와, ‘청파극담’은 유명 인물에 얽힌 일화를 야사 형태로 꾸민 야담·잡록집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륙은 그의 젊은 시절, 곧 세종대 후반에 가씨의 의술을 봤던 것 같다. 이때 그녀는 치아의 벌레, 곧 치충(齒)을 제거하는 데 신기(神技)에 가까운 의술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 의술은 침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통적 한의학요법이었다. 게다가 조선시대 제주의 의술전수 과정을 엿볼 수 있고, 또한 중앙정부에서 제주 여의사를 의녀로 발탁해 갔던 사실도 보인다. 한편 치충의 병통과 경우는 조선의 국왕 중종(中宗)도 앓았던 사실과 아울러, 그 치료의 대강도 기록을 통해 나온다. 이들에 대한 구체적 양상은 다음에 얘기토록 하겠다.

 

사화청피 제조의 원료 7~8월 유기농 풋귤.

.'풋귤'이란...그리고 한의학적 용도(3)

항암 성분 '나리루틴' 함유량 귤피의 10배

요즘 풋귤은 인기가 갑자기 높아졌으나, 이전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풋귤을 줄곧 청피라는 이름의 한약재를 제조하는 데 써왔다. 감귤 미숙과는 우리나라의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덜 익은 뜻의 ‘풋귤’, 제대로 익지 않은 것이라 ‘선귤’이라 한다. 중국의 경우는 푸른색을 띄어서 ‘청귤(靑橘)’이라 부른다.

애초, 풋귤은 감귤 수확량 조절을 위해 솎아내 버렸던 것이다. 심지어 카바이트 강제 착색 등을 이유로 상업적 유통도 금지됐다. 그래서 한약재의 청피는 수요 물량을 거의 수입에 의존했다. 이 가운데 감귤미숙과에 대한 연구가 진척돼 기능적 성분이 많이 들어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제주는 2016년 감귤 미숙과의 이름을 청귤에서 ‘풋귤’로 변경·지정했다. 이는 풋귤 이용이 더욱 활성화된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로써 풋귤의 시장유통도 가능해졌다. 이들 풋귤은 무엇이며,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분류·이용했을까?

현재 제주는 조례로서 ‘8월 15일~9월 15일’을 풋귤 출하 기간으로 정했다. 또한 직경 49㎜ 이상을 상품으로 분류한다. 한편, 청피란 한약재는 5월 중·하순에 꽃이 피고난 후 맺는 감귤 열매부터 채취해 쓴다. 이를 작은 것부터 나열하자면 ▲청피자(靑皮子)=직경1㎝ 미만, 가장 작고 늦은 봄 5월 하순 채취 ▲개청피(個靑皮) 또는 균청피(均靑皮)=5~6월 자연낙하의 유과(幼果)수습·건조, 혹은 절반·4등분 후 속을 긁어낸 뒤 건조, 직경 2~2.5㎝ ▲사화청피(四花靑皮)=7~8월 덜 익은 과실 거둬 껍질을 열매꼭지부터 기부(基部)까지 4등분 후 과육 제거한 뒤 볕에 말림 ▲감청피(柑靑皮)=8~10월 딴 후 과육 제거한 뒤 말림 ▲청피(靑皮)=중양절(음력 9월 9일) 딴 미숙과의 껍질이나, 수확기 상강(霜降) 이후에도 푸른색 유지의 귤을 딴 후 과육 제거한 뒤 말림.

이들 청피는 귤피보다 나리루틴(Narirutin)이 10배 이상 들어있다. 이는 강력한 항산화제로 항암작용이 있거니와, 예로부터 뭉치고 맺힌 것을 부숨(破積結)으로 유방암에 썼다. 반면 숨이 가쁘면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발한작용도 큰지라 기가 약하거나 땀이 많은 사람도 복용을 피함이 좋다.

하여튼 최근 제주특별자치도는 풋귤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출하 10일 전까지 공인기관에서 농약안전사용기준에 따른 잔류농약검사를 받고, 이를 통과한 지정농가에서만 출하를 허가하고 있다.

그 동안 풋귤 관련 정책은 변덕스러워 농가에서 갈피 잡기가 어렵고, 풋귤의 정의도 뒤따르지 않았다고 하겠다. 한편 풋귤은 딴 뒤 4~5일이면 변색된다. 이를 막으려면 비닐봉지에 담아 밀봉한 채 냉장보관, 혹은 냉매제를 넣은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최대한 빠른 출하, 아니면 청피란 한약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럼 다음은 청귤, 곧 풋귤의 한약재 관련 역사적 논의를 살펴보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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