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Amor Fati)
아모르파티(Amor Fati)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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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종일 달구어진 콘크리트 바닥이 한낮 열기 못지않다. 어스름 저녁, 더위를 무릅쓰고 여인들이 공원에 모였다. 타지에서 12일 문학세미나 후, 친교의 시간에 선보일 라인댄스 연습 때문이다. 노래는 폴카 풍의 흥겨운 아모르파티.

첫 연습 시간이라 마음 같지 않게 스텝이 따로 논다. 진땀까지 가세하며 얼굴이 땀 범벅이다. 발도 자꾸 꼬여 어기적댄다. 비교적 단순한 라인댄스이지만 내 다리는 댄스의 기본인 바인 스텝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평균 나이 60을 넘긴 여덟 여인들의 파티 준비는 이렇게 시작됐다.

무대에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동작을 멈추지 않으려면 연습 또 연습뿐이다. 한 시간이 지나자 박자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락이 들리고 머리에서 보내는 신호가 다리에 거지반 전달된다. 올 여름, 밤낮없이 이어진 폭염에 기진맥진했던 몸도 제법 신바람을 탄다. 흐르는 땀이 등허리로 줄기를 이뤄도 기분은 산뜻하다.

무대에 서서 어리벙벙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말자. 연습했다고 프로같이 일사불란 할 리는 절대 만무다. 지금을 즐기자. 뜻이 맞으면서 자유분방한 문우들과 어울리는 이 시간이 좋다.

생각이 마음을 지배한다고 했다. 건강한 몸으로 하루를 즐겁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소중한 게 무엇이랴. 여기 모인 여인들은 제각각 사연이 많다. 운명으로 여겨 견디니까 견뎌 내고 있을 게다. 아픔이 있어도 언제나 꿋꿋하고 명랑한 그녀들이다.

어린 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은 엄마, 아장 걸음마 걷는 아가를 두고 먼저 가버린 무정한 남편을 평생 그리며 늙어가는 여인, 병마와 싸우면서도 매사에 적극적이고 용감무쌍한 여장부, 딸 아들 큰 공부시켰더니 외국으로 훌훌 떠나버려 허무함만 남은 모정, 병중의 남편을 하늘같이 보필하며 3개 국어로 외국인 관광 안내를 하는 지혜로운 여인, 평생 나타날 리 만무인 고도를 기다리며책상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는 어리석고 서글픈 나.

철학자 니체를 떠올린다.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라.’

그래! 인생은 아모르파티(Amor Fati).’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 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 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니체가 살아 있었다면 이 노랫말과 곡조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깐 헛 생각에 따라가던 스텝을 놓쳐버렸다.

카르페 디엠! 이 순간은 아모르파티 물결 타며 라임댄스 파고를 넘는 게 중요할 뿐.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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