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세이지’의 증언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
  • 제주일보
  • 승인 2016.02.18 16: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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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일제강점기 제주도에는 군 위안소가 없었을까? 제주소녀들을 강제로 전선으로 끌고 가 만행을 저지른 사람은 없었을까? 신문 칼럼을 읽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말았다. “한 일본인 노무동원사업자(요시다 세이지)는 1942년부터 45년까지 제주도 등지에서 5천 여 명의 조선인들을 사냥했다고 실토했다. 일단 화물차, 수송선에 실린 소녀들은 ‘순수물자’로 분류되었다.”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한겨레신문 2016년 1월 13일)에서 뽑은 글이다.

1942년부터 3년간 일본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으로 일했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 2000년 사망)는 1982년 아사히신문 인터뷰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해 증언하였다. 그는 태평양전쟁 말기 한국에 건너가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노무자들을 대거 강제 연행했으며, 특히 제주도에서 많은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한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다.

그 다음 해인 1983년 일본 후쿠오카의 한 도서관에서는 요시다 세이지의 저서 ‘나의 전쟁범죄, 조선인 강제연행’이 훼손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책 여섯 쪽에 저자 이름과 함께 ‘배신자’라는 글자가 쓰이는 등 총 아홉 쪽에 글자와 줄이 마구 그어졌다.

1992년 1월 17일자 한국일보에도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요시다 세이지’라는 기사가 실렸다. 요시다 세이지는 제주도에서 200여 명을 연행했는데 당시 제주도에는 군정이 실시되고 있었고, 제주도에는 군위안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본인과 가족은 저항이 대단했으며, 몽둥이로 때리고 차고 경비병들이 총검으로 위협해 진압했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제주 출신으로 최원순(崔元淳)을 비롯, 강명옥(康明玉)·고권삼(高權三)·박종훈(朴鍾壎)·차윤홍(車潤弘)·홍양명(洪陽明)·고문규(高文奎)·양봉화(梁鳳華)·오건일(吳健一)·임관호(任琯鎬)·임두욱(任斗旭) 등이 끼여 있다. 이 중에 노무동원 소위 정신대 동원에 나선 사람도 있다면, 독자들은 놀랄 것이다.

제주 출신으로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던 임두욱(任斗旭)과 고문규(高文奎)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임두욱은 1942년 일본군의 요구로 대만군이 위안부 50명을 보루네오에 파견할 때 위안소를 운영하였고, 고문규는 1941년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한커우(漢口)에서 환의(丸義)위안소를 운영하였다.

현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 또는 일본과 국제사회 사이에 의견이 어긋나는 핵심 쟁점은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것인 지 여부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만들고 운영해 온 위안부 제도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도의적 책임’의 영역이지, ‘법적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이 현실이다.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에서처럼 조선여성을 끌어다 일본군 위안부로 삼은 정신대는 일본의 군사·경찰·행정기관이 총동원되고 종국적으로는 일본 황제가 서명한 법령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국가 시책으로 자행한 비인도적인 범죄 행각이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해 한·일합의 이후 군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공식 입장을 UN에 전달했다.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주장해 온 일본정부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제주지역 대학생들의 손으로 세워졌다. 여기에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에 나타난 사실들을 심도있게 조사하면서, 당시 소녀들이 어떻게 저항했으며, 일본군들은 제주인의 심장을 향하여 어떻게 총검으로 위협했는지를 밝히는 일에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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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전 2018-01-11 19:30:31
요시다세이지 주장은 89년도에 조사결과 거짓이라고 판명됐음. 본인도 거짓이라고 인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