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공론화
‘피노키오’ 공론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1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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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말 수는 적게, 어투는 꼼꼼하게, 목소리는 낮게, 어조는 느리게 하는 것을 언사(言事)의 지침으로 삼았다.

말 수를 적게 하는 것은 실천, 어투를 꼼꼼히 하는 것은 진실, 목소리를 낮게 하는 것은 그 말에 대한 책임, 어조가 느린 것은 그 말이 나온 후의 반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다가는 세상살기 힘들기 꼭 알맞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정보를 분석해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청산유수와 같은 말로 남을 뛰어넘는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말솜씨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사람이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가능한 한 과장해 상대방을 압도해서 대중의 의견을 자기 중심으로 모으는 사람이 소위 유능한 사람되는 세상이니까.

말을 꾸미고 과장하는 일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도 속임수를 빼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자연계의 속임수는 오히려 규칙에 가깝다.

영국 유전학자 로버트 미첼은 자연의 속임수를 네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 속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둘째 속일 대상이 가까이 있을 때, 셋째 시행착오를 거쳐 습득될 때다. 그리고 넷째 단계인 의도적인 거짓말은 인간만이 능통하다.

흔히 남자는 하루 6, 여자는 3회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별일 아니야, 차가 막혀서, 가는 길이야, 예뻐 보여. 실제론 훨씬 자주 할 듯싶다. 하얀 거짓말이면 해() 될 것도 없다. 플라세보 효과(가짜약 효과)는 치료에 도움이 되니까.

진짜 문제는 거짓말이 공적(公的) 영역에서 표출될 때다. 가장 비()민주적인 북한의 국명은 조선민주주의(民主主義)인민공화국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 한창 대유행인 공론화(公論化)’란 말도 공론화(空論化)’될까 우려되는 까닭이다.

지금 제주지역은 헬스케어타운 국제녹지병원 문제를 공론화하더니, 2국제공항건설 문제도 공론화하자고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뉴스의 초점이 된 이후, 이 공론화가 무슨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별 게 아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주민들 사이에서 일정한 의견으로 모은다는 뜻이다.

공론(公論)은 철학용어이기도 하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론은 시민통합의 기반, 정치적 지배의 정통성의 원천이다.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공론의 특성 중 하나인 공개성(公開性)’이다. 공개성은 민주주의의 원리로서 높이 평가된다.

헤겔은 공론화와 공개성은 폭력과 습관이 아닌 견해와 논거로서 결정지어야함을 주장한다. 오랜 관습, 전통, 지배논리가 아닌 다수의 견해와 충분한 논리, 이론, 근거를 가지고 결론을 내야함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시도하고 있는 공론화는 논리와 이론, 사실의 근거에 바탕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를 한층 성숙시키고 사회적 갈등 현안 해결에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계기가 될수 있다.

공론화의 취지가 승자와 패자, 옳고 그름을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라 통합과 상생을 위한 것이란 점을 유념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공론화 과정이 오로지 승패(勝敗)와 정오(正誤)의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갖혀 도민들에게 거짓말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9·11테러 때 수천명이 환호하는 모습을 TV로 봤다고 한 데 대해 피노키오 4를 부여했다. 이는 ‘whopper(터무니없는 거짓말)’, 즉 혹세무민의 허풍을 가리킨다.

거짓말 하면 코가 커지는 피노키오에 빗대, 피노키오 한 개는 일부 사실 은폐, 두 개는 생략·과장으로 사실 왜곡, 세 개는 대부분 거짓인 경우다.

그렇다면 좌와 우의 한 쪽 눈으로만 사실을 바라보는 각 진영의 공론화 주장에는 피노키오 몇 개를 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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