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의 행마
하수의 행마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8.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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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옛날 일로 들릴지 모르지만 불과 2년전이다. 2016년 3월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대한민국 서울로 쏠렸다.

한국의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간 세기의 대결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의 등장은 지금이 아닌 미래로 유보되기를 기대했다.

그 결과 사실상 전 인류가 이세돌을 응원했다. 알파고가 승리했다.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의 등장을 인류가 목격했다.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AI)등장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바둑에 대한 관심이 한 때 시들해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바둑은 세계랭킹 1·2위를 다투는 한국의 박정환과 중국 커제의 ‘활약’으로 명성을 이어간다.

‘생각하는 인간’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바둑은 그 수가 무궁무진하고, 그 내용이 흥미진진해 많은 고사성어를 달고 다녔다.

위기십결(圍棋十訣). 바둑을 둘 때 명심하고 준수해야 할 열 가지 사자성어로, 오늘날 바둑뿐만 아니라 숱한 일상의 상황들에 견줘 회자된다.

위기십결의 하나인 ‘신물경속(愼勿輕速)’. 속단해 덤비지 말고 신중히 생각한 후 착점(실행) 하라는 뜻이다.

#비자림로 훼손 ‘전국공분’

때 아닌 제주의 환경파괴 논란이 전국을 달궜다. 비자림로 확장공사다.

비자림로는 빽빽한 삼나무 군락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길이다.

도로 양옆으로 빽빽하고 울창하게 자라 병풍처럼 늘어선 삼나무숲 경관이 빼어나 제주를 찾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많은 도민이 사랑하는 길이다. 2002년 건설교통부 평가 때는 전국에서 추천된 88개 도로 중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돼 대상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수십 년 전 착하고 선량한 이 땅 사람들이 정성을 담아 심었을 그 삼나무. 세월이 흘러 늠름하게 자라 지금의 아름다운 숲길을 만들었다.

그런데 제주도가 최근 비자림로 가운데 대천동 교차로∼금백조로 입구 2.9㎞ 구간을 왕복 2차로에서 4차로로 확장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구간에 들어간 삼나무군락지 길이 800m 중 500m 부분에 서있던 1000그루 가까운 삼나무가 베어져 나갔다. 계획대로라면 2500그루 가까운 아름드리 삼나무를 베어낸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청와대에는 사업중단을 진정하는 국민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비자림로가 제주만의 길이 아닌 전국의 길이고, 제주의 환경문제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가 되는 흔치않은 현장이 됐다. 결국 제주도가 공사중단을 선언했다.

#‘하수의 행정’ 도마에

비자림로를 확장할 경우 2500그루에 육박하는 삼나무 숲길 훼손문제는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했다면 사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는 이를 간과했다. 이 과정에 지역출신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입김(?)이 적잖이 들어갔다.

민선지방자치 이후 ‘지역민원'에 대해 '안 된다’고 거부하는 쉽지 않다. 표(票) 앞에 당할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비자림로 환경훼손 논란은 많은 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때문에 제주도의 행정행태가 도마에 오르는 게 당연하다. 흔히 행정은 ‘적법하게’ 못지않게 ‘적정하게’를 고민해야 한다. 말 그대로 ‘법대로 행정’은 규정과 절차만 따르면 된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수의 행정’이다. 그런데 지금 행정에 요구되는 것은 ‘적정하게’다. 법대로 하되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까지 담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주도가 도민과 더 소통하고, 더 지혜를 모아 아름다운 생태도로로 만들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지만, 아쉬움은 여전하다.

아름드리삼나무 수백그루가 잘려나간 현장은 지금 황량하다 못해 처참하다.

고수라고 자처하는 기사가 신중함을 잃은 채 상대의 손 따라 하수의 수를 두다 돌을 던진 한편의 단명국을 보는 허망함과 씁쓸함이 나오는 이유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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