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콘텐츠에서 희망을 본다-그리스 탐방기(1)
문화 콘텐츠에서 희망을 본다-그리스 탐방기(1)
  • 제주일보
  • 승인 2018.08.1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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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실.전 제주시장

오랫동안 동경해오던 그리스를 향해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두고 만지작거리던 여행길이었다.

시장 임기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훌쩍 떠난다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아내와 함께 그리스에서 7일을 머물렀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그리스는 또 다른 위기시대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얼마 전 보도된 바도 있지만, 240조원이 넘는 국가부채를 감당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고,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지원을 통해 그나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EU(유럽연합)의 금융 지원 과정에서 철저한 금융개혁을 요구하는 독일과 국민정서도 매끄럽지 않은 상태이다.

여기에 더해 에게해를 넘어오는 시리아, 이라크 등 난민 문제가 국가적 난제로 떠오르는 등 이리저리 힘든 실정이다. 또한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는 대형 산불이 발생해서 8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부상자와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는 등 화마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출구 없는 위기, 아포리아 시대를 그리스인들은 살아가고 있다.

이 나라 젊은이들은 60~70%가 실업자이고 희망을 상실한 상태이다. 이들의 불만과 불평은 낙서로 도배한 아테네 시내의 풍경만으로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미국의 슬럼가를 연상케 하고 정서가 불안하고 어디선가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은 사회분위기가 팽팽했다.

그리스는 우리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제일 먼저 알았던 문화 강국이고 근대올림픽의 발상지로서 유럽문화의 시작점이며 맏형격인 나라다. 그들은 2500여 년 전에 올림프스 신들이 왕국을 건설하고 사람과 신들이 공존하는 문명을 만들어 내면서 서양문화의 창조적 본산이 된 나라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에는 도시국가를 통합하면서 중동,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강성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자를 사형시키고 필로폰네소스 전쟁과 같이 도시국가들이 내전을 치르면서 극도로 쇠약해졌다.

이후 플라톤이 청년들을 위한 아카데미를 창설하고 크세노폰과 같은 현자가 페르시아 제국을 통일시킨 키루스를 모델로 한 국민교육서를 만들고 헤로도토스와 같은 사람은 역사서를 저술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로마제국에 통합되고 이웃인 터키와 오스만 제국에 지배를 받으면서 찬란했던 문명은 훼철되고 처참한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문화재지구에 가면 온전한 그들의 문화유산은 모두 파편들로 남겨져 있고, 강대국 침탈에 의해 유적지의 기둥 하나 남겨지지 않을 정도로 온 나라가 부서져 있다. 목이 없는 신들이 몸뚱이 손과 발이 잘려나간 모습들은 나라의 아픔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전경들이었다.

그러나 고린도 아폴로신전 유적지, 아테네 파르테논신전, 델포이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그들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유적들이 아직도 후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또한 문화적·역사적 자긍심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고의 신인 제우스에서부터 태양의 신 아폴론, 저승의 신 하데스, 사랑의 신 에로스, 결혼의 신 헤라, 바다의 신 포세이돈 등 헤아릴 수 없는 신들의 숨결이 스며든 신전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제주의 18000여 신들이 떠올랐다.

한라산을 지키고 제주를 창조한 설문대 할망을 비롯해서 출산을 관장한 삼승할망’, 농업을 관장한 자청비 세경할망’, 문전과 집안을 관장한 남선비 문전하루방’, ‘조왕할망등 제주 문화와 우리 이야기 하나 하나가 신들의 세계다.

어쩌면 고된 질곡의 삶을 살아가며 신들에게 의지하고 그 답을 갈구해야만 했던 제주인들의 모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부로 이어집니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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