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태양은 가득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1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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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미켈란젤로가 바디칸 성베드로 성당에 피에타를 조각한 것은 24세때 였다. 피에타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에 어머니인 성모마리아의 무릎에 놓여진 예수그리스도의 시신을 묘사한 것이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의뢰인은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작업한 보수의 금액을 듣고는 대단히 놀랐다고 한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는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로마에서는 무명이었다. 무명의 젊은이가 일급 예술가와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니 비싸다고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미켈란젤로는 의뢰인에게 의연하게 이익 보는 쪽은 당신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타협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어차피 진짜라면 완전히 대등한 상호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유효한 문화전략의 노선이 펼쳐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만일 적당히 사기친다고 생각하며 경제적인 것으로만 주판알을 튕겼다면 문화를 창조하지 못한 채 끝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문화를 살리려면 돈을 주는 쪽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안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메디치가문의 후원이 없었다면 르네상스도 없었고, 미켈란젤로도 없었다.

메디치가문을 이야기하지 않고 르네상스를 말하는 건 강물이 굽이쳐 흘러내리지 않아도 넓은 바다가 존재하고 있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

로마의 메세나스가문도 마찬가지다. 두 가문 모두 당대의 시인 예술가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후원해서 그들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기업은 경제적 행위를 하는 조직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다. 정치적 행위는 번 돈을 사용하는 일이다. 문화적 행위는 돈을 쓰는 행위다. 최근 제주에서도 기업과 문화의 연결이 활발하다.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 도움을 받기엔 턱이 너무 높다.

숨이 막힐 지경으로 연일 무덥다.

문득 카뮈의 이방인의 대사가 떠오른다. “잘못을 뉘우치는 가?”라는 판사의 물음에 뫼르소는 태양이 너무 눈 부셔서 그랬다. 솔직히 후회라기보다는 권태감을 느낀다라고 한.

이젠 8월의 매미소리도 없다.

장댓비도 없다. 뭔가 많이 망가져 버린듯한 느낌에 우울하다. 한참 바뀌어버린 제주의 풍광도 낯설다.

문화정책에 대한 구걸도 지겹고, 기업과 문화의 연결에 대한 기대도 별로다.

길을 걸을 때마다 훅하고 코를 찌르는 쓰레기 냄새도 지겹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소피아 로렌이 말한 것처럼 나는 이태리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나폴리 사람이에요

그렇게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애착을 느끼며 외칠 수 있는가, 나는.

제주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자신에게 묻고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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