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문화 깃든 해안길 걷다 보면 ‘숨비소리’ 들리는 듯
해녀문화 깃든 해안길 걷다 보면 ‘숨비소리’ 들리는 듯
  • 제주일보
  • 승인 2018.08.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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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제21코스(하도-종달올레)/해녀박물관~별방진성 3.9㎞
낯물밭길.
낯물밭길.

# 숨비소리길

올레 21코스 출발점에서 조금 나서면 해녀박물관 남쪽에 숨비소리길간판이 서 있다. 송상조의 제주말 큰사전(2007)’에는 숨비소리좀녜가 물 위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물 속에 잠기어 숨을 멈추고 작업을 하다가 물 위로 올라왔을 때, 허파에 압축되었던 공기가 입 밖으로 한꺼번에 새어나오면서 나는 소리로, 긴 휘파람 소리 같이 나는 특이한 소리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녀박물관 자리는 묘하게도 세화리, 상도리, 하도리가 맞물리는 곳이다. 그러나 숨비소리길은 하도리 농로와 별방진성, 그리고 해안을 돌아오는 코스다. 별방진성까지 이르는 길은 거의 올레길과 맞물린다.

하도리는 제주의 마을 중에서 해안선을 가장 넓게 차지하면서 해산물이 풍부한 어장을 갖추었다. 그러기에 현역으로 활동하는 해녀수가 가장 많은 마을이면서, 해녀문화와 관련된 역사적인 장소도 골고루 갖춘 곳이다.

정작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해안누리길은 아니지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 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장소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그 코스에 해녀 물질 작업 현장’, ‘모진다리 불턱’, ‘해녀 탈의장’, ‘갯것이 할망당’,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탑을 넣었다. 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어디서나 긴 숨비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재현해 놓은 해신당.
재현해 놓은 해신당.

# 제주의 해신당

해녀박물관을 벗어나기 전 경내에 재현해 놓은 제주의 해신당에 발길이 머문다. 해신당(海神堂)은 어부와 해녀들의 물질작업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장소로 보통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돈짓당으로도 불린다.

이곳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잠수굿은 해녀들의 무사안녕과 풍요를 위해 치러지는 제의다. ‘잠수굿은 음력 38일에 행해지는 김녕리의 대표적인 굿으로 중간에 해녀들이 나서 즐기는 축제 형태의 의례라고 할 수 있다. 해녀들은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이 굿에 바칠 제물을 시간을 보아가며 정성스레 마련하는데, 생업과 의례가 하나가 된 모습이다.

안내판에는 의례과정의 <요왕맞이>는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龍王)을 굿판으로 맞아들여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제차이며, <씨드림>은 전복, 소라, 우뭇가사리, 톳 등의 씨앗을 뿌리는 의례다라고 했다. 이 곳은 김녕리 소재 서문하르방당을 재현했다.

 

# 면수동을 지나며

그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발을 옮기면 눈에 익은 배 세 척을 만난다. ‘해녀호’, ‘제주호’, ‘탐라호로 풀밭에 나란히 세워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닻을 있는 입구로 연대동산에 올랐다가 돌아 내려가면, 널찍한 구좌읍 하도운동장이 나타난다. 비록 인조잔디지만 스탠드와 400m 트랙까지 갖췄다.

나와서 맞는 면수동의 팽나무와 기품 있는 마을회관이 멋있다. 아래층에 자리한 경로당에 가면 무더위를 식혀줄 냉방이 마련되어 있을 터. 마을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논물동네라고 하며, 120여 년 전 김덕원씨 부친이 처음 정착했고, 이어 주변 마을에서 바다 가까운 싼 땅을 찾아 모여들었다 한다.

논도 없는데 면수동(面水洞)’논물동네라 한 것은 의 고어인 을 합쳐 발음상 논물이라 한 것 같다. 오창명의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1998)’에서도 뜻은 확실치 않지만 그런 식으로 풀이했다. 그렇다면 올레 지도에 나오는 낯물밭길면수동의 밭길이라는 뜻이겠다.

 

# 걱정되는 올 당근농사

구좌읍의 당근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농산물이다. 지역 어딜 가나 밭에 모래가 섞여있어 품질이 좋은 까닭이다. 이 지역은 동부지역에 위치해 있어 비교적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가끔 태풍의 피해는 있어왔지만, 올처럼 가뭄에 속수무책인 경우도 없었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 엊그제 입추 날에 도의회 의원들이 현장 확인 차 방문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면수동 마을회관에서 농로로 접어들어 별방진성에 이르는 2.2를 걷는 동안 보이는 것은 검붉은 흙이 드러난 밭뿐이었다. 정확히 대파를 심은 밭 하나와 콩을 심은 무덤 터를 제외한 모든 밭은 보기에 딱할 정도다. 어떤 밭은 파종을 완료한 것으로 보이는 데도 전혀 발아되지 않았고, 초벌만 갈아엎은 곳도 많다. 이곳에 대부분 당근이나 월동무를 심을 것 같은데, 아직도 비 소식은 감감한 채 농심은 타들어가고, 길 걷는 나그네 목까지 타오른다.

 

복원해 놓은 별방진성(부분).
복원해 놓은 별방진성(부분).

# 별방진성

농로가 끝나는 지점, 별방진성을 복원해놓은 곳에 이르렀다. 가만히 살피니 오른쪽(동쪽)은 복원해 놓았고, 왼쪽(서쪽)은 그대로 자취가 남아 길게 뻗쳐있다. 이곳 안내판의 설명으로는 별방진은 조선 중종 5(1510)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이곳은 우도와 함께 왜선이 와서 정박하는 곳이 가깝다 하여 김녕방호소를 철폐하고, 이곳 하도리로 옮겨 구축한 진()이다라고 했다.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타원형 성곽인데, 규모는 둘레 1008m, 높이 3.5m 정도로 동남쪽에 각각 문과 옹성 외에 치성 7개소가 있었다. 성안에는 진사객사공수사령방군기고대변청을 비롯해 흉년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별창까지 갖춘 조선시대 제주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진성(鎭城)이었다.

하지만 길을 사이에 두고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다. 물론 한쪽은 새로 복원해 쌓았고, 한쪽은 옛 그대로인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돌의 질이나 쌓은 방식이 너무 다르다. 고증을 거쳤다면서 성의 길이와 높이, 폭 정도만 맞추어 돌로 쌓았다고 다가 아닌 것이다. 쌓은 방식이나 돌의 질이 현대의 성이지 조선시대 성으로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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