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범 선생 독립유공자 敍勳의 의미
김시범 선생 독립유공자 敍勳의 의미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0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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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시범 선생(18 90~1948)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올해 광복절을 즈음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敍勳)한다. 또 김 선생과 함께 조천만세운동을 벌이고 조천·신촌·신흥·함덕 등에서 주민 1500명을 규합했던 한백흥 선생 등 제주지역 독립운동가 4명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표창을 받는다. 다섯 분 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김시범 선생은 1919년 기미년 321, 조천 미밋동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 시위를 주도했다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른 분이다. 그는 나라를 사랑한 애국자이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는 해방과 함께 초대 조천면장을 맡고 건국준비위원회 조천면위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제주4·3사건의 도화선이 된 1947년 관덕정 3·1사건에 연루된다.

그가 사회주의 계열 인사라는 지적를 받으면서 그동안 정부로부터 독립유공 서훈을 받지 못했던 배경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정부가 김시범 선생에 대한 서훈 결정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해방 전후사()의 그늘에 묻혀 있던 그의 공적이 100년 만에 역사의 빛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역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역사인식이 이런 과거의 부채를 수용할 만큼 고양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금 국민의 상당수가 좌·우익을 떠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인정해야 한다고 답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번 김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좌우 갈등이라는 우리 제주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혀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은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하자 사회주의를 통해 독립을 찾으려고 했다.

김시범 선생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이끄는 중도 좌파 건국준비위원회 계열이었다. 여운형계는 해방 공간에서 폭력노선을 걸은 박헌영계와는 달리 사회주의 노선이면서도 좌우 합작에 매진한 중도 좌파로서 확실한 위상을 정립했다. 그런 역사의 평가를 바탕으로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많은 건준 계열 인사들이 2005년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그러나 김시범 선생 등 제주지역 건준 인사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해온 것은 우리 제주 현대사의 4·3이란 그림자 때문이었다.

독립운동을 어떤 수단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에 따른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진 좌우 대립과 분단 상황이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우파 모두를 우리의 독립운동으로 껴안을 때 우리 독립운동의 정통성은 그만큼 더 넓어지는 것이다.

내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제주지역 좌·우파 모든 계열의 독립운동 공적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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