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 길 걷다 보면 아름다운 ‘서빈백사’ 한 눈에…
바람따라 길 걷다 보면 아름다운 ‘서빈백사’ 한 눈에…
  • 제주일보
  • 승인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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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제1-1코스(우도올레)/농로사거리~하우목동항 3.9㎞
돈짓당 너머로 보이는 성산일출봉.
돈짓당 너머로 보이는 성산일출봉.

# 해안누리길 ‘우도 해안도로’

아니나 다를까, 우도 해안도로 역시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전국 52개 걷기 좋은 해안길인 해안누리길로 선정되었다. 난이도 매우 어려움단계의 이 길은 천진항에서 출발하면 홍조단괴해빈 해수욕장을 거쳐 하우목동항, 답다니탑, 하고수동 해수욕장, 검멀레, 우도봉 정상, 돌칸이 해안, 고인돌을 거쳐 천진항 항일 해녀기념비에 이르는 17의 코스로 5시간이 소요된다.

농로사거리에서 해변에 이르는 길은 설문대할망 구비전승을 주제로 꾸며지고 있다. 제주섬 어디에 간들 설문대할망의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있으랴만, 이곳 우도와 성산 사이가 바다화된 것은 설문대할망의 오줌발 때문이라는 화소(話素)에서 영감을 얻은 듯하다. 말방에와 나체여인상, 돌하르방 부부, 설문대할망 상징물 등이 들어섰다

 

우도고인돌.
우도고인돌.

# 우도의 역사

남쪽 해안에서 동쪽 돌칸이 사이 길 가운데 고인돌이 있어 우도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고인돌의 존재로 보아 해적이 창궐하기 전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이 증명되며, 제주의 고인돌이 본토보다 조금 늦은 기원전 300년에서 탐라시대까지로 추정하는 것으로 볼 때, 이곳도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쇠머리오름 우도의 역사안내판에는 우도는 신생대 제4기 홍적세(200만 년 전~1만년) 동안 화산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화산도이다. 조선 숙종 23(1697, 유한명 목사 당시)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를 관리, 사육하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헌종 8(1842)에 입경 허가를 받고 2년 뒤에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였으며, 1900년 경자년에 향교훈장 오유학 선생이 연평으로 명명하였다고 썼다.

몇 년 전 지질학을 하는 강순석 박사와 답사 왔을 때 이곳 돌칸이 주변에서 화산지질의 여러 현상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쇠머리오름 폭발은 약 7만 년 전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이곳의 갈대화석은 아무래도 그 후 성산일출봉이 터졌을 때인 약 5000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라 들었다.

 

# 우도해녀와 해신당

기억을 더듬어 해안가에 내려가 보고 나서 작은 돌멩이로 쌓아올린 탑 사이로 보이는 성산일출봉을 바라보는데, 해녀의 숨비소리가 들린다. 천진항 가까이에 해녀탈의장이 있어서인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대여섯 분의 해녀가 작업 중이다. 그 옆 해신당으로 올라가 본즉 잡초 더미 가운데 괴어놓은 돌 아래에 사르고 남은 소지인 듯 하얀 것이 보인다.

영등 환송제를 하는 우도의 마을 돈짓당은 바다를 다스리는 마을 수호신 또는 어업의 수호신이 깃든 곳이다. 해마다 2월에 영등 환송제, 7월 백중제, 8월 용왕제 등 당제를 봉행해 왔으며 섬 일대의 돈짓당은 바닷가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포구(浦口)의 해신당인 셈이다.

천진항 중심부에 우도해녀 항일운동 기념비가 서 있고, 아랫단에 강관순의 해녀 노래를 새겼다. 강관순은 우도 출신의 항일운동가로 19321월에 구좌읍 해녀항쟁이 일어나면서 비밀 결사가 탄로나 관련자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1933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26개월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지은 해녀 노래는 당시 항일 운동의 노래로 불리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이다.

 

# 천진항과 우도

천진항은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성산을 오가는 관문 역할을 해왔다. 부두 입구에 세워져 있는 관문에 섬 속의 섬이라는 글귀가 익숙하다. 우도에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던 1980121일에 구좌읍 연평출장소가 들어섰고, 198641일 북제주군 우도면으로 승격이 되면서 천진리조일리서광리오봉리 등 4개리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20067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라 제주시 우도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커다란 소라껍질 구조물이 있는 곳에서 성산일출봉을 보고 나서, 천진리 사무소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천진리 마을회관이 있는 곳까지는 우도 여느 마을이 그렇듯 드문드문 집과 밭이 섞인 구조다. 다시 북서쪽으로 길게 나 있는 농로를 따라가면 서천진동 마을이고, 해수욕장으로 가는 시멘트 농로길이 나타난다. 얼마 없어 해안길이 나타났는데, 바다로 통하는 물질로 모두 일곱 분의 해녀 아줌마가 성게를 한 망시리씩 지고 나온다.

망시리 가득 성게를 지고나오는 천진동 해녀들.
망시리 가득 성게를 지고나오는 천진동 해녀들.

# 서빈백사와 홍조단괴

거기서 얼마 안 가 홍조단괴 해수욕장이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홍조단괴는 산호모래로 알려졌었고, 수석에 까는 모래로 밀반출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나 홍조단괴는 홍조류의 산호말 등이 광합성으로 세포 혹은 세포 사이 벽에 탄산칼슘을 침전시키는 석회조류 중의 하나다. 이렇게 생체 내에 축적된 탄산칼슘은 나중에 단단하게 굳어져 돌처럼 되는데, 이것을 홍조단괴(紅藻團塊)라 한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3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백사장은 아름다워 우도팔경의 하나로 꼽는다. ‘우도81982년 우도중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김찬흡(金粲洽) 선생이 명명한 것들이다.

주간명월(晝看明月)은 어룡굴 천장에 비친 달그리안, 야항어범(夜航漁帆)은 비양도 주변의 고기잡이 불빛, 천진관산(天津觀山)은 천진항에서 보는 산의 풍경들, 지두청사(地頭靑莎)는 우도봉 주변의 경치, 전포망도(前浦望島)는 종달리와 하도리 사이에서 보는 우도의 모습, 후해석벽(後海石壁)은 바다에서 보는 우두봉의 뒷모습, 동안경굴(東岸鯨窟)은 동쪽 검멀레 해변과 콧구멍, 그리고 이곳 서빈백사(西濱白沙)의 해변 풍경이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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