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섬, 이어도를 찾아보자”
“돌아올 수 없는 섬, 이어도를 찾아보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0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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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꿈과 희망으로 나가자 바다로!’
탐사선 스쿠버호
탐사선 스쿠버호

“전설 속 파랑도 찾아내 최초로 이어도로 명명”

장순호 부대장
장순호 부대장

198446일부터 같은해 49일까지 한국 해양소년단 본 연맹이 주최하고, 제주연맹에서 주관이 되어 우리나라 민간단체 최초로 시행한 파랑도(소코트라 록, 파랑여, 이어도) 탐사는 파랑도에 대한민국 깃발과 해양소년단 제주연맹깃발을 부표에 띄워 대한민국의 이어도임을 확인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 탐사는 많은 희생과 난관을 극복하면서 끝내 우리의 설화와 전설에 전해오는 파랑도를 찾아내는데 성공하고 최초로 이어도라고 명명하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필자는 당시 해양소년단 제주연맹 부회장으로서 탐사부대장을 맡았으며 이때의 상황과 자료를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이미 고인이 된 대원들의 업적을 국가에 인증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어도에 대한 우리 제주도민의 사랑과 주권 수호의지를 내외에 밝히고자 한다. -장순호 부대장 필자 주

 

필자는 지금부터 36년 전(1982), 한국해양소년단 제주연맹 초대 부연맹장직을 맡고 있었다.

한국해양소년단은 ‘21세기 해양의 시대를 맞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해양에 관한 교육 훈련을 통하여 해양사상을 고취시키고 투철한 국가관과 진취 기상을 함양케 하여 해양 개발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한국해양소년단 제주연맹 임원단은 꿈과 희망으로 나가자 바다로!’ 라는(한국해양소년단 목적) 구호를 외치며 제주도민들에게 설화와 전설로 전해져오던 파랑도 탐사를 결의했다.

우리 제주도민이 힘겨울 때마다 희망으로 기대던 그곳을 찾는 이어도의 꿈과 외침을 실제로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 탐사를 준비하기 위해 제주해양소년단은 막대한 예산과 인적 물적 채비를 갖추어야 했다.

당시로서는 이 탐사가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맹 임원단은 대한민국이 아직 찾지 못한 이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서자고 결의했다.

준비는 1982년부터 시작돼 2년여 시간이 소요됐다. 그렇게 설화에 나오는섬 이어도 신비의 섬’, ‘전설의 섬 파랑도가 어딘 가에 있을 것으로 보고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섬’, ‘유토피아적인 섬을 찾아 나선 것이 소코트라 록바로 파랑도’, ‘이어도탐사였다.

우선 연맹은 사전 준비와 연구조사에 집중했다.

탐사대원인 제주대학교 해양대학 해양연구소 소장 정상철 박사와 조재윤교수는 영국, 일본, 한국 해도를 수집하고, 이어도 해역의 자료를 모으고 밤낮으로 분석했다.

제주어민들로부터 이어도 부근 정보도 수집했다.

이어도 부근에 가서 조업을 하다가 하얗게 물결치는 파랑도의 모습을 직접 보았던 어민들을 면담했다.

또 한재철 항해담당 팀장은(2t급 선장) 해양해도의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각 나라 해도를 구입하여 소코트라 록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구하였다.

당시에는 지금 이어도가 영국해도에는 소코트라 록으로 일본해도에는 파랑여로 명기돼 있었고 우리나라 해도에는 파랑도라고 표시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가서 직접 물 속에 들어가 이를 확인하는 수중탐사에 성공하였다는 기록은 보고된 바 없었다.

우리는 영국해도에 있는 소코트라 록이란 섬을 찾기로 결정하여 뜻을 함께한 제주대학교 해양대학 전문교수들과 해양에 관계하는 각계 지인들을 찾아 모임을 갖게 되었으며 1982년 공식적으로 탐사연구준비 모임을 결성하였다.

바로 그 해에 한국해양소년단 제주연맹은 연맹 발족 초대 중점사업으로 소코트라 록탐사를 결정하여 서울의 본부 연맹에 의사를 타진하였고 지원협력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해 격려의 답신을 받았다.

제주연맹장 최웅길 박사(고인)와 필자는 임원들을 비롯하여 해양학 전문교수들과 함께 수 십차례 모임을 갖고 정보 및 서적 그리고 제주의 설화로, 신화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이어도를 연구했다.

우선 우리는 다음 사실에 주목했다.

1953년 오산에서 출발 오키나와로 가던 군 수송기가 제주도 남방 상공에서 갑자기 지도에도 없는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주변에 붉은 섬을 발견하고 그 지점을 표시한 후 돌아오는 길에 확인했더니 보이지 않았다는 보고서였다.

두 번째는 1958년 영국비행사가 제주도 남방 상공에서 위기상황을 맞아 물 위로 솟은 이 섬을 보고 마라도로 착각하고 착륙을 시도하다 암초인 것을 알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세 번째는 1951년과 1973년에 정부가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탐사를 진행했는데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사실들을 숙지하고 우리는 1982년부터 탐사대를 조직하여 파랑도 수중탐사 실행준비를 위한 연구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훈련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전국의 숙련 어업인들을 탐문 섭외했다.

천만다행으로 소코트라 록근처에서 매년 4월 초에서 5월 사이에 조류을 맞춰 안전하게 5년 이상 조업을 하였다는 배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그 정보를 수소문한 끝에 경상도 선적 여진호라는(25t) 어선의 선주이자 선장인 박춘길씨(당시 42)와 어렵게 연락이 되었다.

연맹은 1982915일 박춘길씨를 만나 소코트라 록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듣고 협의를 계속하여 함께 그곳을 찾아나서기로 합의하였다.

박춘길씨는 자신이 보고 느낀 많은 정보를 말했다. 그를 설득하여 탐사대에 합류토록 했다.

연맹은 박춘길 여진호선장을 제주에 초청하여 함께 합숙하면서 그곳의 바다 상황을 확인하는 등 그 근처에 위험한 식인상어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수중 탐사 안전준비물로 철책보호캡슐도 2기를 제작했다.

제주대학교 해양연구소도 그곳의 세세한 바다환경 여건을 확인하고 항해일정을 협의했다.

드디어 탐사준비 2년 후인 198446일쯤 우리 임윈들과 전문 스쿠버 다이버, 해양학술연구원 등 20여 명의 실행탐사대를 조직했다.

한림항 또는 모슬포항을 모선으로 여진호’(25t)를 선두로 탐사선 스쿠바호’(5t)와 함께 탐사를 나서기로 일정을 잡았다.

이때부터 탐사대원들은 주말마다 육상연습과 해저 스쿠버다이빙 훈련을 강도 높게 제주 근해 깊은 바다 30m~40m에서 수중 심해 잠수훈련을 강행하였고 최종적으로 잠수 수중탐사대원 6명을 확정하였다.

최종 잠수수중탐사대원은 다음과 같다. 대장=최웅길, 부대장=장순호, 해양학전문교수=정상철, 프로다이버=고동진·김종환, 항해전문가=한재철(이상 6). <계속>

탐사대원들. 맨 왼쪽이 필자인 장순호 부대장.
탐사대원들. 맨 왼쪽이 필자인 장순호 부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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