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봉 정상 오르니 자연 절경이 한 눈에…‘장관’
우도봉 정상 오르니 자연 절경이 한 눈에…‘장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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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제1-1코스(우도올레)/하고수동해수욕장~농로사거리 4.2㎞
우도봉 능선에서 본 망동산, 담수정수장 뒤 풍경.
우도봉 능선에서 본 망동산, 담수정수장 뒤 풍경.

# 하고수동에서 영일동으로

해수욕장이 끝나가는 곳에 서정혜 시인의 ‘우도에 가면’이란 시비가 서 있다. 뭍에서 모처럼 이곳 우도를 찾은 시인이 만난 바람이 ‘왜 우는 걸로 비쳐졌을까’는 꽤 아리송하다.  

‘밤새 별을 품은 파도가/ 모래 둔덕에 앉아 기웃거린다/ 싱싱한 새벽 건져 올리는 해안선/ 물풀은 한없이 자유롭고/ 돌아와 누우면/ 가슴팍을 찾아드는 뱃고동 소리/ 단단하게 속이 찬 하늘/ 깊이 뿌리박고 꿈을 부르면/ 비로소 닻을 내리는 바다// 목 쉰 등대 몰아대는/ 우도의 바람은 불지 않고 늘/ 운다.’
-서정혜 ‘우도에 가면’ 모두

안내지도에는 여기서 비양도가 있는 해안으로 돌아서 가게 되었는데, 올레길은 그냥 조일리 사무소 앞으로 바로 나 있다. 그 길 양쪽에 숲이 이어지고, 그 숲속으로 산책길을 내었다. 숲이라 해야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를 위시하여 돈나무․천선과․예덕나무․까마귀쪽나무, 그 아래로 순비기나무가 자리 잡았다. 길게 이어지는 농로 변에도 간혹 보이는 나무들은 그런 나무들과 사철나무 정도다.

검멀레해수욕장.
검멀레해수욕장.

# 검멀레해안과 용안경굴

새로 난 올레길은 바로 우도봉 오르는 길 쪽으로 나 있지만, 아무래도 용안경굴을 빼놓을 수 없어 걸멀레해안으로 발길을 옮긴다. 우도의 세 해수욕장은 다 특색이 있는데,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의 모래는 검은 빛을 띤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도봉의 속살인 화산쇄설물이 풍화작용에 깎여 흩어졌다가 다시 파도에 밀려와 쌓인 것으로 삼양해수욕장의 모래와 비슷하다.  
미역, 감태 같은 해조(海藻)가 밀려와 쌓인 해변을 걸어 들어가면 바로 해식동굴이 나오는데, 이곳의 경치가 우도8경에 들어가는 ‘동안경굴(東岸鯨窟)’이다. 배를 타고 멀리서 보면 꼭 고래의 콧구멍처럼 보인다는 이곳은 썰물 때를 이용해 들어가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풍경 또한 색다르다. 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의 미묘한 음감이 좋아, 해마다 이곳에서는 동굴소리연구회 주최로 동굴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 우도봉에 오르며

모처럼 숲을 만나자 가파른 계단을 오르게 되어 있어, 할 수 없이 오름 입구에 자리한 매점에서 시원한 물 한 병 사 마시고 쉬엄쉬엄 오르며 오름을 생각한다. 처음에 얕은 바다였거나 조간대에 노출된 환경에서 물과 접촉을 하여 원활한 화산활동을 하면서 쇄설물이 쌓이고 퇴적되어 응회환의 분화구가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쌓인 후 물과 접촉 없이 화산활동이 계속되면서 화구에서 나오는 용암은 북쪽 사면을 파괴하고 흘러 섬의 용암대지가 형성된다.
그러면서 계속된 화산활동은 우도봉과 망동산을 만들고 멈추게 되는데, 그러고 보면 섬 전체가 우도봉 화산활동의 산물이다.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자 풍화작용에 취약한 퇴적층은 바다에 면한 곳을 깎아내어 해식애를 이루는가 하면, 속살을 파고들어 해식동이 만들어졌다. 앞서 소개한 동안경굴 말고도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오름 남동쪽에는 ‘주간명월(晝間明月)’이라 하여 낮에 빛이 반사해 천정의 달 모양을 비치는 해식동굴이 있다.
우도봉은 ‘쇠머리오름’이라 하는 표고 132.5m, 둘레 3707m의 오름과 ‘망동산’이라고 하는 알오름(표고 87.5m, 둘레 792m)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망동산 옆 낮은 곳에는 우도담수정수장이 자리 잡았고, 정상에 우도등대가 있다.

# 우도등대와 등대공원

우도봉 능선에 오르면 사방이 환히 트여 섬 전체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하얀 등탑와 만난다. 이 등탑은 우도 부근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운항을 위해 1906년에 설치하여 97년간 운영했던 등대다. 그러다 보니, 노후되어 2003년 11월에 생명을 다하는데, 항로표지의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원형을 보존하게 된 것이라 한다. 가운데 제주도 최초의 등대인 우도등대 점등 100주년을 맞아 원형대로 복원한 ‘우도등간(牛島燈竿)’과 설문대할망 ‘소망항아리’를 지나 새 등대가 나타난다. 2003년 11월 10일에 세운 새 등대 1층엔 국내 주요 등대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전시되었다.
등대 아래편에는 새 등대를 세울 때 같이 설립한 등대공원 야외전시장이 있는데, 영덕의 특산물인 대게의 발을 넣어 만든 창포말등대, 탑처럼 만든 중국 상해의 마호타 파고다등대, 그리고 제주의 도대불 사진을 모두 모아놓은 것 등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탐라순력도 중 ‘우도점마’.
탐라순력도 중 ‘우도점마’.

# ‘우도점마’ 이야기

등대공원에서 내려오는데, 말을 탄 일행이 앞으로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돌리니, 망오름 주변에도 작은 말 서너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한 때 이곳은 말을 길렀던 국영목장이 아니던가. 그 내용을 살필 수 있는 문헌이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우도점마(牛島點馬)’다.
그의 ‘남한박물(南宦博物)’에 따르면 우도에 목장이 설치된 것은 숙종 23년(1697)이라 했다. 그 전에는 해적이 출몰로 사람이 살지 않고 섬을 그냥 비워 두었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숙종 28년(1702) 7월 13일 아침, 이형상 목사가 성산에서 일출을 보고나서 바로 이곳 우도로 와서 말을 점검하는 그림이 ‘우도점마’다. 이 날 점검한 말의 숫자는 262필이었고, 목자와 보인은 23인이었다.
그림을 보면 성산과 마주한 섬의 그림이 심상치 않다. 어룡굴(魚龍窟)을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린 모양으로 그려 놓았다. 우도로 건너가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서 ‘그 속에 신룡(神龍)이 살아 가까이 가면 왕왕 태풍뇌우가 일어 나무가 뽑히거나 배가 뒤집는 일이 종종 있어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까닭이리라. 그러나 점마를 끝낸 목사는 목장을 다 돌아보고 난 뒤 기어이 들어가 보았다고 전해진다. <계속><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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