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움, 그리고 제주인
제주다움, 그리고 제주인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8.07.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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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면 마음이 포근했다. 공항 대합실 문을 열면 탁 트인 시야에 야자수가 먼저 반겨줬고, 멀리서 한라산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 이제 집에 왔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같은 느낌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제주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제주출신들은 고향의 향기를 먼저 눈으로 맛봤고, 관광객들은 드디어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했다. 이처럼 제주공항은 첫 모습부터 각자에게 의미를 갖고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공항 대합실 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문득 거대한 장벽에 마주선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극심한 주차난과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매몰되다보니 한라산이 사라져 버렸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외국에 나가 보면 공항 대합실 지근거리에서 승차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불편을 해소한다는 명분 아래 제주의 첫 인상을 부지불식간에 포기해 버린 셈이다. 공짜는 없었다. 어떤 이는 이같이 말했다. ‘제주의 관문을 잃어버렸다.

제주공항의 사례는 공공의 편의를 위한 일이고, 설사 의도하지 않더라도 한 순간 제주다움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최근 제주시 도시 숲주차장이 도마에 올랐다. 결론적으로 제주시가 도시 숲을 베어내 그곳에 만들려던 주차장 조성사업을 철회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그 같은 발상 자체가 문제다.

제주시는 숲지대 완충녹지인 해당 부지 일대가 도시계획시설로 변경된 데다 주민 200명이 찬성함에 따라 사업을 추진했다는 입장이다. 대규모 가스저유소로부터 시민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완충녹지임에도 이 같은 시도가 이뤄진 데는 일부 주민들의 민원과 손쉽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행정 편의주의가 맞물려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실 해당 지역 인근을 야간에 지나다보면 꼬리를 물고 길거리를 점령한 차량 행렬을 만나게 된다.

각종 민원이 분출하는 현장에서 행정이 한순간 긴장의 끈을 놓고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제주다움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제주가 핫 플레이스로 뜨면서 제주에서의 또 다른 삶을 위한 발걸음이 멈추지 않고 있다. 더불어 관광지 조성 등을 비롯한 대규모 사업과 틈만 보이면 파고드는 타운하우스 등 각종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최근 몇 년간 제주는 제주섬 탄생 이래 겪어보지 못한 급격한 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제주에서 다시는 개발의 기회가 없을 것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제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도민이 상당수다.

시대 변화에 발을 맞춰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발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갈수록 절감하게 된다.

결국 제주가 스쳐지나가는 지금 이 시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도민 공감대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편의 무게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르면 2020년부터 환경보전기여금 성격의 환경세 도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제주도민들은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나하고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제주를 즐겨 찾았고 최근에는 일년의 절반 정도를 이곳에서 살았던 외국의 한 지인은 제주를 지켜보면서 천천히 가는 길이 좋은 길이라고 틈만 나면 조언했다. 유럽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물섬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한순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황폐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 한 것이다. 제주를 사랑했던 그가 오늘따라 그립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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