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들이 날씨가 덥다며 냉커피 한잔을 만들어 건넨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라 한마디 하려다 그냥 고맙다며 받아 들었다. 투명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의 색깔이 얼음과 잘 어울렸고 맛은 시원했다. 집으로 오는 동안 잔은 비었고 빈 컵은 플라스틱 분리함으로 던져졌다. 그 함에는 이미 우리 집에서 나온 삼다수병, 막걸리 병, 약병, 식품포장 용기 등 플라스틱 친구들이 많다.
요즘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심각성이 관심을 받고 있다. 북태평양에 한반도 넓이의 일곱 배나 되는 플라스틱 섬이 있다는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리하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들어가거나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다거북이나 해양 조류의 생태에 영향을 미치며, 미세 플라스틱 입자는 군집 어류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에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기형이 된 거북이를 인터넷에서 보고 마음이 짠했다. 거북이가 새끼일 때 플라스틱 링에 걸린 채 빠져나오지 못해 계속 성장하다보니 몸이 기형이 된 것이다. 죽은 바다거북, 고래, 새의 뱃속에 각종 플라스틱 조각들이 들어 있는 영상을 보면서 인간들이 죄를 많이 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조사에서 천일염이나 조개의 소화기관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었다는 글도 접했다. 어패류를 먹는 내 몸속에도 미세한 플라스틱이 들어와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니 오싹하다.
플라스틱 쓰레기의 특징은 미생물에 의해서 분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밝힌 플라스틱의 분해속도를 보면 낚싯줄은 600년, 플라스틱 페트병은 450년, 플라스틱 부표50년, 컵 50년, 나일론 섬유 30-40년, 1회용 비닐 주머니 10년이다. 태우는 것도 문제다. 발열량이 크고 다량의 공기를 소모하며 유해가스가 분출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플라스틱 쓰레기처리는 골치 아픈 일이다. 나라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대책들을 세우고 있지만 늘어나는 양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지 않을 수도 없고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플라스틱제품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없어 지지 않을 것이다. 사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애월 해안도로에 있는 어느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켰더니 일회용 컵에 나왔다. 현장에서 마시고 간다는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회용 컵에 나와서 이유를 물었다. 종업원은 정중하게 “가게 방침이 일회용을 쓰게 되어 머그잔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황당한 답변을 들어서 어이가 없었다. 경제논리로 보면 설거지하는 비용보다 일회용 컵을 쓰는 것이 이익일 수 도 있다. 그 경제논리가 어젠가 제주도를 쓰레기의 섬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커피나 음료를 머그잔이나 텀블러에 주는 커피숍 문화를 꿈꾸어 본다. 그 꿈은 소비자와 가게의 아름다운 약속이 지켜질 때 가능하다. 나부터 텀블러를 가지고 가서 ‘여기에 커피를 주세요’라고 말해보자. 한 사람, 두 사람, 하다보면 그게 문화가 되는 것이다.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쓰레기 양산 보다는 조금 불편한 게 낫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일회용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쓰레기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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