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두 번 올 곳이 아니다?’
‘인도, 두 번 올 곳이 아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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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48)삶의 원초적 모습을 지닌 남인도를 찾아서(7)-파타다칼 유적지
파타다칼 유적지를 둘러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지역 주민의 결혼식을 보게됐다. 신랑과 신부, 하객들이 사원 주위를 도는데 특히 신랑은 오체투지를 하며 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문화유산인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파타다칼 유적지를 둘러보다가 생각지도 못한 지역 주민의 결혼식을 보게됐다. 신랑과 신부, 하객들이 사원 주위를 도는데 특히 신랑은 오체투지를 하며 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문화유산인 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도를 처음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 번 올 곳이 아니다란 말을 합니다. 그만큼 인도는 혼돈과 같은 종교와 인간 간의 관계를 외면할 수 없어 거북살스러워 불편해지거나, 두려워지거나, 혐오스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미신에 휩쓸린 형편없는 것으로 치부해 피해버리거나, 한심한 것들이라고 웃어넘기며 지나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인도에서 종교가 박제화되지 않는 한, 단순한 여행객으로 발을 디뎠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인도여행을 계기로 자신과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됐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인도여행 중에 얻게 되는 부수입이자 즐거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 남인도 오지를 돌아다니면서 제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인도를 세 번이나 오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정작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지금껏 정신없이 사진 찍느라 인도를 제대로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때가 되면 인도를 가야한다는 마치 사명감 같은 마음으로 인도를 찾고 있다.’ 참으로 옹색한 대답이지요.

소를 숭배하는 사원. 아직도 많은 신도들이 찾는다.
소를 숭배하는 사원. 아직도 많은 신도들이 찾는다.

매년 들판에서 뻐꾸기가 뻐꾹~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길을 나서야 할 때가 됐구나하고 인도나 티벳을 향하게 됩니다. 연중행사가 됐죠. 정말 못 되고 철없죠.

올해도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즈음이면 저는 서부 티벳에 있는 성지 중에 성지라는 카일라스 산을 트레킹하고 있을 것입니다. 카일라스 산은 인도의 힌두교 신교나 티벳의 불교 신도들에게는 최고의 성지로 여겨져 매년 수많은 순례객이 찾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디스커버리 방송에서 카일라스 순례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음 목표는 카일라스 트레킹이다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다행히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별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군요.

오늘은 어제 왔던 길을 20정도 되돌아가 가서 세계문화유산인 파타다칼을 먼저 찾는다고 합니다. 찰루키아 왕조의 세 번째 수도였다는 파타다칼을 향하는 길, 차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아침 공기가 무척 기분 좋습니다.

곱게 꽃단장 한 인도 여인들. 결혼식 하객들이다.
곱게 꽃단장 한 인도 여인들. 결혼식 하객들이다.

찰루키아 왕조는 초대 국왕 풀라케신 1세가 543년 마이소르 북부 바다미 지역에 나라를 세우며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왕조는 남하정책을 펼치다 보니 수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그러다가 실론왕국의 연합군에 패하며 풀라케신 2세가 전사하고 수도 바다미가 함락돼 왕조의 분열을 겪기도 했답니다.

파타다칼은 마을과 인접해 울타리를 쳐서 관리를 하는 모양입니다. 7~8세기 세워졌다는 이곳은 아이홀과 마찬가지로 남인도 건축양식의 발전 단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군요. 이곳의 사원들 가운데 초기 유적은 3~4세기에 들어섰고 가장 나중 것은 라슈트라쿠타(Rashtrakuta) 시기(9세기)의 젠교(자이나교) 사원이라고 합니다. 넓은 벌판에 세워서 그런지 왕궁과 사원들은 지붕이 네모나고 층이 위로 올라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파타다칼에서 찰루키아의 황제 비크라마디티아가 대관식을 올리기도 했다는데 사실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나을 듯 싶어 얼른 카메라를 들고 나서봅니다.

유적지 내 왕궁과 사원들을 둘러보는데 곳곳이 파괴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른 왕조였다는데 그 역사를 실감할 수 있네요.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한 사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소를 숭상하는 듯한 사원인데 아직도 많은 신도들이 찾는가 봅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소상을 사원 가운데 모셔 놓고 신도들이 주변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또 종을 치거나 물을 뿌리기도 합니다. 신기한 그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그런데 한 쪽 편에서 피리와 북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네요. ‘무슨 일이지?’ 하고 얼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는데 뜻밖에도 결혼식이 열리나 봅니다.

신랑과 신부가 동내를 돌아다니다가 소를 모셨던 사원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원에 도착한 이들은 주위를 돌기 시작했는데 신랑은 티벳에서 봤던 오체투지처럼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도네요. 그리고 어린 화동(花童)들이 앞에서 꽃가루를 날리고 신랑 어머니는 옆에서 아들이 절을 할 때마다 나뭇잎에 물을 묻혀 바닥에 뿌립니다. 이후 한참 동안 주위를 돌던 신랑과 신부는 사원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결혼식을 올립니다.

찰루키아 황제가 대관식을 올렸다는 궁전.
찰루키아 황제가 대관식을 올렸다는 궁전.

생각지도 못한 지역주민의 결혼식을 보게 됐네요. 그것도 옛 궁전과 사원이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이곳에서.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장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보자니 많은 생각이 드네요. 귀한 문화유적을 우리처럼 철망을 쳐서 보호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네요.

관리 방법의 차이인지 아니면 유적이 너무 많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네팔의 한 세계문화유산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어떤 방식으로 유적을 보호하는 게 옳은 것인지.

결혼식이 끝났는지 곱게 꽃단장을 하고 하객으로 참석했던 인도 아가씨들이 우르르 몰려나옵니다. 얼른 카메라를 잡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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