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에는 추억이 산다
비자림에는 추억이 산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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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오랜만에 비자림을 찾았다. 예전의 호젓함은 간 데 없고, 북새통을 이룬 모습에 깜짝 놀란다. 주차장을 넓혔는데도 차들로 가득하고 매표소 앞엔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연인과 같이 걷는 다정한 커플, 아이를 목말 태운 아빠와 그 옆에서 도란도란 말을 건네며 걷는 엄마, 친구로 보이는 한 무더기 일행의 왁자한 웃음, 모두가 즐거운 모습이다. 보는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이삼 년 전까지만 해도 비자림은 언제나 조용했다.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이곳을 찾곤 했다. 간간이 찾아오는 관광객도 뜸하다 싶으면 가끔 맨발로 걸었다. 화산 송이의 감촉을 느끼며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건강을 생각하며 지압의 효과를 챙기기도 했다. 북적이는 풍경을 보니 유명해진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나만의 비밀장소를 잃어버린 것 같은 애석함도 없지 않다. 시끌벅적 소란스러워진 것도 조금은 염려스럽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며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걷는다. 비 내린 후라 그럴까, 풍성한 수국은 더욱 싱그럽고 비자나무가 내뿜는 향은 진하게 다가온다. 주렁주렁 달린 비자 열매를 보면서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다. 마냥 즐겁게 걷는 저들은 비자를 간식으로 먹던 그때의 시절을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 이곳은 힐링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찾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추억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소풍 장소는 언제나 비자림이었다. 우리는 가지고 온 점심을 먹고 난 후 빈 도시락에 비자를 주워 담았다. 가급적 많이 주워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주웠다.

비자는 군것질 거리기도 했지만,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귀한 상품이 되어 주기도 했다.

찬바람이 불면 어머니는 이곳을 지키는 산지기 몰래 비자를 주워 오셨다. 이웃 분들과 동행하여 쉬쉬하며 다녔다. 당신 혼자라면 못했을 불법 행위다. 먹고사는 일이 힘에 부치던 시절이기에 알면서 모르는 척 눈 감아 주기도 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행하던 아슬아슬한 추억이다. 비자는 씻고 말리기를 반복하여 떫은맛을 없앤 후 상인에게 팔기도 하고, 우리 자매들의 간식거리며 구충제가 되기도 했다. 어렴풋이 아버지의 바둑판이 생각난다. 비자나무를 손수 깎아 만든 바둑판이다. 목수인 아버지는 두 개의 바둑판을 만들어 나무 주인과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주인 잃은 바둑판을 지인에게 줘 버렸다. 문득 그 바둑판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아버지의 정성이 깃든 그 바둑판은 지금도 제 역할을 하며 잘 있을까?

우듬지에 뿌리를 내린 천선과 나무와 이끼와 콩짜개란과 각종 식물을 보듬어 안은 비자나무의 모습이 거룩하게 보인다. 길고 긴 역사를 품고 이어져온 이곳이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으로 보존되기를 기원하면서 비자 열매를 찾아본다. 아직 덜 익은 채 바람결에 떨어진 열매를 주웠더니 콩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지기 몰래 비자를 줍던 어머니의 따뜻한 심장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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