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꽃 곱게 핀 정겨운 시골길…장터엔 인심도 ‘넉넉’
여름꽃 곱게 핀 정겨운 시골길…장터엔 인심도 ‘넉넉’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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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제20코스(김녕-하도올레)/한동해안도로~해녀박물관 5.4㎞
계룡동 옛길.
계룡동 옛길.

# 한동리 계룡동을 지나며

한동리 해안도로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호젓한 시골길이 이어진다. 더러 잔디가 깔리고 길 따라 왼쪽으로 이어지는 조그만 둔덕엔 여름 꽃이 피기 시작했다. 문주란, 닭의장풀, 골무꽃에 소엽맥문동 꽃도 보인다. 집 안팎에는 접시꽃들이 끝물을 이루었는데, 밭 구석엔 옥수수가 수줍게 수염을 내치고, 호박꽃도 피어 수수한 농촌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계룡길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시골집이 모여 있는 골목을 돌아 나오니, 정자가 쉬고 가라 손짓한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들도 정답고, 울타리 너머에서 달맞이꽃이 인사한다.

능소화 곱게 핀 골목을 지나자 작은 화단을 가꾸고 올레꾼들을 응원하는 글을 써 붙인 곳이 있다. 화단에는 개나리부터 시작하여 씨방을 단 자란(紫蘭)이 보이고, 얼마 안 있어 과꽃이 피려고 준비 중이다. 해바라기와 봉숭아를 심은 집도 있고, 원추리도 자라나 정말 꽃을 사랑하는 순박한 농촌 인심을 자랑하는 기분 좋은 동네를 지난다.

평대 어촌계 건물.
평대 어촌계 건물.

# 평대 옛길

기분 좋은 길은 평대 옛길로 다시 이어진다.

옮겨 심은 고구마 줄기는 활착을 끝내 줄을 뻗치기 시작했고, 참깨 꽃도 오종종하게 피었다. 모래가 많이 섞인 밭들이다. 일찍 심은 옥수수는 제법 도톰해지고, 민간에서 방풍(防風)’이라 부르는 갯기름나물도 일제히 꽃을 피웠다. ‘벵듸고운길의 시작을 알리는 예쁜 글자판을 따라가니, 곧 바닷가 해안도로다.

벵듸넓은 벌판을 뜻하는 제주어로 그걸 한자로 표기한 게 평대(坪岱)’.

방파제에 기대어 마을 지도판과 걸을 만한 골목길 약도를 세워놓았다.

오소록길’, ‘쉰모살’, ‘도깨동산’, ‘고냉이물’, ‘수리왓길. 이름도 곱다. 옆에는 인정이 많은 마을임을 입증하듯이 마을어장 개방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웠다. 평대어촌계의 마을어장을 연중 개방해 보말, 조개, 참게 등을 1kg 한도 내에서 잡아 갈 수 있게 했다.

어촌계 건물에는 해산물과 함께 민속화를 그리고 평대 최고 당근이라 크게 써놓았다.

 

# 부시흥 망사비

평대바다를 만난 지 얼마 안 돼 올레는 다시 밭 사잇길로 이어진다. 전에 이곳 평대마을을 방송 촬영한 적이 있는데, 부대각 전설과 관련된 비석을 본 적이 있어 발품을 팔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비석은 도깨동산 해녀탈의장 너머 불턱 뒤편에 세워져 있는데, ‘통정대부 만호 부공시흥망사비(夫公時興望思碑)’라 되어 있다. 내용을 보니, ‘힘이 세다는 데서 부대각 전설과 여러 곳에 나타나는 아기장수 설화가 접목된 것 같다. 그러나 비문을 보면 실존 인물이다.

부시흥은 후세에 부대각이라 불릴 만큼 힘이 장사였는데, 1678(숙종 4)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장이 되었으며, 훗날 조정에서 통정대부 만호를 제수 받아 내려오던 중, 6대조인 어모장군 부유겸(夫有兼)의 묘가 식산봉 정상에 있는 장군석을 정면으로 비추어 후에 대장군이 태어날 것이라는 설을 근거로 제주목사가 그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후손들이 아쉬운 마음에 불귀의 객이 되고만 조상을 기리는 비를 세운 것이다.

세화리 오일장.
세화리 오일장.

# 세화오일장

세화오일장은 제주시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그런지 시골 장터로서는 그 규모가 제법 크다. 특히 풍부한 어장을 갖고 있어서인지 어물전이 제법 볼만하다.

농산물과 식품, 꽃이나 한약 재료, 옷감, 농기구 등 생필품이 총 망라 되었다.

5일과 10일에 열리는데, 요즘 거래되는 고기는 갈치와 고등어, 오징어를 비롯 멸치, 말린 생선들이다. 이태 전에 들렀다가 비께(두툽상어)’를 발견한 적이 있으나, 요즘은 멸종되었는지 통 안 보인다.

오일장의 인기는 아무래도 먹거리다.

속이 출출해져서 구수한 냄새를 따라 국밥집으로 들어가 보니, 모처럼 장에 왔다가 들른 노부부가 옆에서 맛있게 음식을 들고 있고, 더러는 친구끼리 만나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분위기에 끌려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병을 후딱 해치우고 나서니, 배가 든든해져 걷는 다리에 힘이 솟는다.

# 해녀박물관 

해녀박물관은 답사 차 몇 번 들른 일이 있는데,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때문인지 많이 개편되었다.

해녀는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본토는 물론 일본 등지로 원정 물질을 가면서 제주경제의 주역을 담당했던 제주여성의 상징이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 박물관을 건립하여 해녀문화를 전승보존하고, 21세기 문화예술의 메카로 가꿔나갈 목적으로 건립한 해녀박물관의 제1전시실은 해녀의 생활로 어촌마을, 음식문화, 해신당과 굿, 2전시실은 해녀의 일터로 불턱, 물옷과 물질도구, 해녀 역사, 해녀 공동체, 3전시실은 해녀의 생애로 물질 이야기, 해녀의 삶, 해녀 작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어린이 해녀관도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 남쪽에 위치한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탑19321월 구좌면과 성산면, 우도면 일대에서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과 민족 차별에 항거해 해녀들의 일으킨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기념탑 옆에 세운 강관순 여사의 해녀노래비를 보면 당시 해녀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 되면 돌아와/ 어린 아이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 종일 일했으나 번 것은 기막혀/ 살자 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중략) 배움 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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