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각자의 기호에 따라 관심이 가는 물건들을 모은다. 어떤 분들은 어느 특정한 분야와 관련된 것만을 전문적으로 수집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무척 다
양한 방면에서 수집벽(收集癖)을 보이기도 한다.
일단 한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주변에서 같은 분야에 취미가 있는 애호가를 만나게 된다. 관심 분야가 같으니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통하는 바가 많을 수밖에 없고, 곧 그 분의 소장품 목록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 진다.
그렇게 교류가 시작되면 각자의 소장품을 공개하게 되고, 그 와중에 서로 갖고 싶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매매를 원하는 경우에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맘에 드는 걸 골라서 매입하면 그만이지만,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엇비슷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교환하는 경우도 많다. 종종 비슷한 분야에 수집 취미를 가진 분들의 연락을 받고, 그 댁에 방문을 할 때면 묘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얼마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교외에 있는 한 소장가 댁을 방문했다. 그 분과의 몇 차례 대화 속에서 이미 예상을 했던 대로 바로 데리고 오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아쉬운 대로 책 몇 권과 녹유장군 등을 골라서, 전부터 그 분이 관심을 보이시던 필자 소장의 그림 한 점과 교환했다.
그렇게 입수된 책 중 하나가 바로 조선 숙종 때 김만중(金萬重 1637~92)이 지은 소설인 목판본 ‘구운몽(九雲夢)’이다. ‘춘향전’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전소설로 학창시절 교과서 등에서 부분적으로 읽어서 알고 있던 책이라 전부터 한권쯤은 소장하고 싶었었다.
책 맨 뒷 부분에 있는 간기(刊記)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15년 전인 1803년(崇禎後三度癸亥)에 간행된 속칭 계해본이다.
전 6권 1책으로 구성되었지만 제2권 끝 부분에 ‘구운몽권지초종(九雲夢卷之初終)’이란 글귀가 있고, 책등에 여러 층의 단차(段差)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3책이나 4책으로 구성되었던 것을 나중에 한 책으로 합본한 것으로 보인다.
김만중이 귀양지에서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이 책은 한문과 한글로 간행되거나 필사된 수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하는 데, 이는 조선후기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서 그 만큼 환영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임금이었던 영조 조차도 “아주 좋다(極好矣)”(‘承政院日記’ 英祖 39年 12月 25日)는 평가를 내렸고, “패관소설(稗官小說)은 사람의 심술(心術)을 가장 해치는 것이니, 문장(文章)과 경술(經術)에 뜻을 둔 선비라면 상을 준다고 하더라도 보지 않을 것”이라며 소설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었던 정조(正祖)도 어머니를 위해 하룻밤 사이에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높이 평가했었다.(‘弘齋全書’ 第163卷 ‘日得錄’)
발표된 이후 이 책을 모방하거나 변형시킨 작품들이 계속 나와서 조선 후기의 소설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었던 만큼 이제는 축약되거나 부분 수록하지 않은 온전한 작품을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몇일 후 또 한 분의 소장가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또 어떤 귀한 인연을 만날 수 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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