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심(魯智深)의 숙명(宿命)
노지심(魯智深)의 숙명(宿命)
  • 제주일보
  • 승인 2018.07.1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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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제주국제대 특임교수·국제정치학 박사·논설위원

선거가 끝나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물가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인 수호전(水滸傳)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마음의 평온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사람들이 갈등하고 싸우는 것이 정해진 숙명인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에서는 젊어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읽지 마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왜 그런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紛紛)하다. 아마도 삼국지연의에서는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관점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에 수호전에서는 운명은 정해져 있으며 사람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길을 깨닫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타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수호전은 북송(北宋) 말기 휘종 때 농민반란을 일으킨 송강(宋江)을 다루고 있으나 대부분이 허구이며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역사서에는 송강이 36명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휩쓸었다라는 짧은 기록만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수호전은 서두에서부터 숙명론이 나타나고 있다. 송나라 인종(仁宗)이 통치하던 어느 해에 전염병이 퍼지자, 조정에서는 대장군 홍신(洪信)을 용호산(龍虎山)으로 보내 장진인(張眞人)을 모셔 오도록 했다. 용호산 상청궁(上淸宮)에 이른 홍신은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는 간판이 걸린 색다른 전각 하나를 보고 궁금해 하며 도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봉인을 뜯어내고 전각을 열었다.

신전 한복판에 석비가 있었는데 마침내 홍이 문을 열다라는 글이 있었다. 홍신은 예언대로 비석을 파내자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라서 108 요괴가 풀려났다. 이렇게 해 인간으로 태어난 108명의 호걸은 수호전의 중심인물들이 되었다. 수호전의 인물들은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기구한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분하고 원통한 일들을 겪게 된다.

수호전에서 숙명론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인물은 아마도 노지심(魯智深)일 것이다. 그는 송나라의 위주(渭州) 경략부에서 치안을 책임지는 하위직인 제할(提轄)을 맡고 있었고 당시 이름은 노달(魯達)이었다.

정의감과 정이 많았던 노달은 떠돌이 악사의 딸을 괴롭히는 악인을 혼내려다가 죽이고 도망자가 됐다가 출가해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문수원(文殊院)에 머무르게 된다. 문수원에서 말썽을 일으키자 문수사 주지인 지진장로(智眞長老)는 노지심을 대상국사(大相國寺)주지 지청선사(智淸禪師)에게 보내게 된다. 지진장로는 노지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네 구절로 된 게()를 알려줬다. 그 사구게는 봉하이금 (逢夏而擒)/여름을 만나면 사로잡고, 우납이집(遇臘而執)/섣달을 만나면 굳게 붙들어라, 청조이원(聽潮而圓)/조수소리를 들으면 둥글어지고, 견신이적(見信而寂)/편지를 보면 고요해질 것이다였다.

이는 노지심의 정해진 운명이었다. ‘여름에 사로잡을 것(逢夏而擒)’이라고 했는데 송림에서 하후성(夏候成)을 사로잡았고, ‘섣달에 잡을 것(遇臘而執)’이라는 것은 방랍(方臘)을 사로잡은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조수소리를 들으면 원만해질 것이고(聽潮而圓), 편지를 보면 고요해질 것(見信而寂)’이라는 구절은 조신(潮信)을 만나서 원적(圆寂)한다는 것이었다. 노지심은 예언대로 전당강(錢塘江)의 조수소리를 들어 한 순간에 도를 깨우치고 세상을 떠났다.

금강경에 일체 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일체유위는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찰하라라는 가르침이 있다. ‘일체의 세상사가 꿈이요, 순간이다라는 인식이 있다면 용서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심경을 헤아리는 데서 관용과 화해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끝없는 용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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