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의 추억(?)
계엄령의 추억(?)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8.07.11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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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국제뉴스에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야간에 거리를 배회자가 잠재적인 골칫거리”라고 말한 지 불과 1주일 만에 경찰이 무려 7000여 명을 체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마닐라 경찰청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배회하는 이들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면 연행해도 좋다”라고 말한 이후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통행금지 위반, 길거리 음주, 과도한 신체 노출도박 등의 사유로 이들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을 놓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자 해리 로케 필리핀 대통령궁 대변인은 “대통령은 현재 계엄령을 선포할 의사가 전혀 없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보도됐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길거리에 있는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치안 유지를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거리를 배회한다고 체포를 당해야 한다면 어느 시민이 수긍할까?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유사시 각종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위수령 발령과 계엄 선포를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혀 우리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이 의원이 입수해 이날 공개한 문건은 기무사가 지난해 3월 작성해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기무사는 이 문건에서 “북한의 도발 위협이 점증하는 상황 속에서 시위 악화로 인한 국정 혼란이 가중될 경우 국가안보에 위기가 초래될 수 있어 군 차원의 대비가 긴요하다”라며 “국민의 계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해 대응하고 상황 악화 시 계엄 시행을 검토”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다음 날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계엄군으로는 모두 육군에서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명, 특수전사령부 병력 1400명 등을 동원한다고 계획했다.
이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공수부대로 시민을 진압했던 ‘5ㆍ18 광주’의 아픈 기억을 우리 국민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데 군 역시 그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 역시 계엄과 관련해서는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제주4ㆍ3사건과 관련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해 12월 31일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수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주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여순반란, 6ㆍ25전쟁, 4ㆍ19혁명, 5ㆍ16군사정변, 6ㆍ3사태, 10월 유신, 부마사태, 10ㆍ26사태 등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에는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무사가 존재한다. 기무사는 1948년 정부 수립 직후에 만들어진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가 전신이다. 특별조사대, 육군본부 특무대 등을 거쳐 1977년 육ㆍ해ㆍ공군 보안사를 통합해 출범한 보안사로 전성기를 맞았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안사령관 출신이었고 12ㆍ12 쿠데타에서 신군부의 권력 장악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기무사령관은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를 하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통했다.

하지만 1990년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동향을 사찰 폭로로 존립에 위기를 맞았으며 이후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으로 그 위세가 위축되는 듯 했으나 기무사는 끊임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사이버사령부가 창설되고 이번 계엄 문건에서 보듯이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관련 지난 10일 인도 순방 중임에도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은 직ㆍ간접적으로 계엄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으며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우리 국민에게 계엄은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에서 타올랐던 촛불은 어떤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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