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나가사키와 제주4.3에서 본 평화
日나가사키와 제주4.3에서 본 평화
  • 홍수영 기자
  • 승인 2018.07.10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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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맣게 타버려 화석처럼 굳은 시체 옆에 한 여인이 망연자실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 뒤로 시체들과 무너진 건물, 돌들도 모두 까맣게 탄 채 나뒹굴고 있다.

194589일 오전 112. 여인은 운이 좋게도(?)’ 일본 나가사키 폭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것은 통째로 타버린 마을과 본인이 어머니에게 선물한 머리장식을 달고 있는 시체였다.

지난달 말 워크숍 참여 차 일본에 방문해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본 사진의 모습이다.

이 사진이 걸린 전시실은 194589일 원자폭탄 투하로 지옥이 돼버린 나가사키의 피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폭으로 인해 112분을 가리킨 채 멈춘 벽시계, 두개골이 붙어버린 철모, 당시 나가사키에 살고 있다가 피폭된 부산 할머니의 증언 영상 등.

원폭자료관을 돌고 나오면 국립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이곳의 추모공간으로 들어서면 청록색의 유리 기둥들이 늘어선 끝에 명부보관선반이 보인다. 선반에는 원폭사망자들의 성명을 등재한 명부와 함께 아무것도 기재되지 않은 빈 명부가 놓여 있다. 빈 명부는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은 사망자를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추모공간을 지나니 폭포처럼 물이 흐르는 벽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목이 마르다며 물을 달라고 호소했던 피폭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립 나가사키 평화기념관을 나오면서 제주4·3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대량학살. 지금까지도 희생자와 유족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역사. 아픔을 딛고 평화를 기원하는 모습까지.

지난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평화라는 두 글자가 자주 회자되고 있다.

진정한 평화에 대한 정의는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를 지우고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4·3의 완전 해결’, ‘평화의 섬등이 공허한 표어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새겨볼 일이다.

 

홍수영 기자  gwin1@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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