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2077책 읽고 꼬박 13년간 만화로 집대성
'조선왕조실록' 2077책 읽고 꼬박 13년간 만화로 집대성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6.02.16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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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화백

조선을 건국한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에 걸쳐 총 1893권‧888책, 이후 일제에 의해 편파적으로 기록된 ‘고종실록’, ‘순종실록’에 이르기까지 무려 2077책, 하루 8시간씩 읽어도 무려 4년이 넘게 걸린다는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고 20권의 만화로 재탄생 시킨 박시백 화백을 최근 경기도 고양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서른 후반에 시작한 일이 쉰이 되어서야 끝났다. 처음 시작할 때 7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몇 년이 더 소요되었다. 그래도 20권이라는 분량부터 형식과 내용까지 대체로 처음 구상했던 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작가후기 중)

어릴적 이야기를 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만화다. 박시백 화백을 만나자마자 ‘만화를 어느 정도 좋아했느냐’고 물어보자 “만화를 좋아하지 않으면 만화가가 될 수 없다”라고 웃으며 말한다. 13년을 꼬박 조선왕조실록을 그려낸 그는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자란 제주소년의 이야기를 꺼내줬다. 금악오름을 오르며 꿩을 잡기 위해 꿩코를 놓았던 이야기며, 초등학교 시절 예비만화가로 ‘갱지’라고 불리는 8절지를 꼭꼭 접어 연필도 귀했던 그 시절, 그림을 그리던 이야기도 해줬다. 수학을 잘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고등학생이 되자 상황이 역전돼 힘들어했다는 이야기 등등 쉰을 넘긴 만화가는 유년시절 고향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놓았다.

박시백 화백은 시쳇말로 ‘잘 나가던’ 시사만화가였다. 당시 제도권 언론에서 가장 왼쪽에 있다고 평하는 일간지 ‘한겨레’에서 박재동이라는 걸출한 시사만화가의 바통을 이어받고 등장해 매일매일 한 컷의 만화로 세상을 기록했다.

당시 독자들은 한겨레 그림판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 칭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신문사를 박차고 나왔다. 2001년 4월이었다.

“독자들은 작가들이 계속 성장하길 바라죠. 당시 외환위기(IMF환란)를 겪고 우리의 정치 현실은 반복됐고, 제 스스로 성장이 멈춘 채 그냥 가는 느낌이 왔어요. ‘이렇게 몇 년 더 가다간 에너지가 다 빠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던 시절이었지요. 평생 만화가로 살아가야 하는데 고민하던 시절 TV에서 ‘왕과 비’라는 역사드라마를 보게 됐어요.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팽팽한 긴장감이 정말 재밌었지요. 하지만 막상 책을 찾아보니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았고 역사적 사실이 다르게 기술돼 있는 거예요. 해석이 다른 게 아니라, 팩트가 달랐던 거지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나오게 된 배경 중에 드라마가 한 역할을 한 셈이다.

그에게 40대를 온전히 함께 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뭘 전달하려 했던 것이냐고 물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왜 ‘민중사’가 아닌 ‘왕조사’를 했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사실 왕조사는 굉장히 중요하다. 엘리트들이 그 시대를 만들어가기도 했고, 그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서 행동했던 것들, 희생했던 것들, 분명 그런 사람들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고 책임졌던 시대를 살아왔다. 그런 것들은 현대로 올수록 더욱 중요하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선왕조실록 자체에 대한 공부가 너무 안돼 있었다. 비전문가들이 보기엔 대학 교수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실록을 다 읽어보고 역사를 서술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물론 실록 자체의 양이 워낙 많고 방대하지만, 왜곡된 것이 너무 많았다. 2~3권째 쯤부터 (실록의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작업을 했다.”

그는 “세종편을 보면 황희 정승에 대해 나온다. 우리에게 황희 정승은 청렴결백한 인물로 그려지고, 양녕대군은 동생이 임금으로서 능력이 출중하다고 생각해 왕위를 양보하는 거처럼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전혀 아니다. 세종은 굉장히 주목받는 인물이어서 많은 연구와 조명을 받았는데도, 그 시절조차 야사가 사실인양 알려져 있는 것이 많았고, 그래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시백이 조선왕조실록을 완성하자 주변에선 현대사, 근대사, 고려사 등도 다뤄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실록에 충실한 그의 작품은 초등학생부터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독자의 경계가 없다. 역사만화라는 새 영역이 구축되면서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처럼 시대를 담은 역사만화에 대한 요구가 많아진 것이다.

박시백은 조심스레 제주4‧3이야기를 꺼냈다. 중간중간 잠시 말을 끊기도 했다. 고민이 많아 보였다. “제주4‧3을 다뤄 달라는 요청도 많았지만 현재까진 어려울 것 같다. 4‧3도 그렇고, 현대사를 가장 하고 싶은데, 안할 것 같다. 조선실록이 재미있었던 건, 소개가 덜 돼 있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록의 내용을 취합하고 요약해서 정리하는 형식인데, 현대사로 오면 정말 어렵다. 당파성, 자기만의 사관을 최대한 자제하고 팩트 중심으로 가야하는데, 우선 1차 사료가 너무 양이 많고, 이미 연구된 (누군가의 사관을) 종합하고 기술해야 하는 데 쉽지가 않다. 현대사 중에서도 해방부터 1950년대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안할 것 같다. 1980년대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사에서 독재와 민주가 응축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누군가 정리하면 좋겠다. ‘요구는 많으나 매력적이지 않은’이라고 정리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일제강점기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는 “조선왕조실록 이후 1910년 강제병합부터 해방까지를 다루려 한다”며 “당파, 정파가 구분되는 시기라 우리 현대사의 원형질과도 같다”고 새로운 작업의 의미를 알렸다. 박시백은 일제 강점기 35년을 연표로 정리한 분량이 A4 700장 정도라며 올해 1권은 출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시사만화가에서 역사만화가로 새 영역을 구축한 그에게 우리 역사에서 제주는 어떤 위치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실록을 보면서 몇 안되는 제주기사가 나오면 눈이 더 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관료들의 중앙집권화된 시스템 안에서 제주는 변방이었다. 수탈의 대상이었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서울 이외의 지역은 모두 변방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과 달리 지리적 환경, 독특한 문화, 풍경, 역사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박시백 화백은…1964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등학교를 졸업,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들어갔으나 어릴적 꿈꾸던 만화가가 되기 위해 1996년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했다. ‘박시백의 그림세상’으로 입지를 굳혔으며 2001년 신문사를 그만두고 13년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 몰두, 2013년 20권을 완간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과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를 담아내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울=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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