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가서 상담을 하다보면 모처럼 시간이 맞아 상담이 비거나 마칠 때 반갑게 마주치는 선생님들이 있다.
대부분 상담 시간에 맞춰 나왔다가 다음 일정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미리 약속을 하면 모를까 서로 만나 긴 대화를 나누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이긴 하다.
하지만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끔은 돌아갈 채비를 하고 나오는 복도에 서서, 가끔은 다음 상담을 기다리며 환기를 시키려고 열어놓은 문 틈을 보면서 웃는 얼굴로 “선생님 잘 지내시죠. 그런데…”하고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내심 서로들 기다렸던 시간들이기도 하다. 작정해 시간을 내진 못하지만 이런 짬 시간에 서로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동안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술술 나오고 그저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이후 시간을 맞이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아마, 내가 유난해서 혹은 부족해서 느끼는 ‘나만의 힘듦이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과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구나’하는 연대감이 들어서 일게다.
최근에는 평소 말 맵시, 옷 맵시가 고와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연배가 나보다 많은 선배와 여러 번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행운이라 여기며 얼른 달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묻고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도 반갑게 맞아 주며 서로 일하면서 쌓였던 궁금증, 해봤더니 좋았던 해결책들을 나눠 주었다.
한 직업을 적어도 이십년 넘게 해온 지라 어쩌면 ‘다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일은 그렇지 않다. 늘 새로운 사람이 더 크고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온다. 더 이상은 나갈 수 없는 앞이 막힌 길에 서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선배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막다른 길에서 만난 동반자 마냥 나를 반갑게 맞으며 손을 잡고 함께 나갈 길을 모색해 주었다. 든든했다.
선배가 해준 여러 이야기 가운데 “나도 그래!” 이 말이 필자는 가장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다.
나도 그래. 나도 그래. 나도 그래….
며칠 전에 만난 선배는 밀려드는 일을 마다 않고 했더니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면서 더 아프기 전에 일단 3개월 휴식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국경일이나 명절 연휴라도 겹치는 주에는 일감이 밀려 휴일에도 상담 일정을 잡는 일이 다반사인데 3개월을 쉰다는 이야기를 해서 큰 병은 아닌지 너무 염려된다는 마음을 전했다.
“맞아, 너무 나를 돌보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이 문제만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 정작 내 몸이 우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 그러고 보면 강 선생은 연년생 두 아들의 고3 뒷바라지 연이어 하면서 주로 쎈 사건들 다루느라 몰두해 어디 여행 갔다 왔다며 소식 전해주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고 했었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강 선생이 느끼는 그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 어쩌면 강 선생을 잘 버티게 해주는 힘이겠다 싶어. 그렇다고 나처럼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필자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 종이에는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의 글이 적혀 있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갈라 놓는 낭떠러지를 극복할 수 없다면, 달나라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의 낭떠러지로 가는 여행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여행이 없다면 다른 여행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
우리의 낭떠러지로 가는 여행이 가장 중요하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수차례 읽어보았다.
선배 덕분에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 자신의 약한 면과 만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필자는 그 길에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잠시 멈출 수 있는 그 지혜도 닮아가려 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