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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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0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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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이다.

초목이 발랄한 계절이건만 국제사회는 어수선하고 조용한 날이 없다. 청포도로 유명하다는 시리아의 다라야를 떠올린다. 이 나라는 7년간의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난민 신세가 되어 다른 나라에서 부초 같 은 삶을 살고 있다.

요사이 제주도에도 무비자로 입국한 예멘 난민이 수백 명 머물며 난민 신청을 요구하고 있어 난감하다는 소리가 분분하다.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딱하다. 새삼 내 나라의 평안이 소중함을 깨우치게 한다.

얼마 전에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이란 책을 읽었다. 시리아 내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펼쳐놓는 동시에 자유와 비폭력, 인간다운 삶을 꿈꿨던 작은 도시 다라야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발단은 삼 년 전 페이스 북에 올라온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다. 내전이 진행 중인 시리아 한복판에 있는 지하도서관에서 청년 두 명이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다.

암흑처럼 앞이 깜깜한 현실에서 지하도서관을 만든 계기는 신의 계시처럼 왔다. 내전의 폐허 속에서 스물세 살의 대학생 아흐마드가 건물 잔해에서 책 뭉치를 발견한다.

몇 쪽을 읽으며 지옥 같은 현실 상황을 잠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을 맛본다.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책 속에서 희망의 에너지를 본 것이다. 그는 책을 지하로 옮겨 비밀 도서관을 만든다.

한 달 600여 차례 폭격이 무자비하게 퍼부어 대는 곳, 정부군 봉쇄로 식량과 의약품도 받을 수 없는 아비규한 속에서도 유일하게 희망을 품는 곳은 지하도서관이었다. 매일 사람들이 방문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인기 도서목록 중 하나였다. 지상은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지만 지하에서 펼친 책에는 가슴 따뜻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었다.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마법 같은 힘과 용기도 주었다. 폭격 잔해와 함께 사라졌을 만여 권의 책을 모아 비밀의 도서관을 만든 청년 아흐마드와 친구들은 이웃들과 책을 읽으며 절망의 시간을 견딘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 두고 공유하며 영혼을 살찌운 그들의 정신은 본받아 마땅하다.

한 장의 사진을 토대로 암울한 사람들의 일상을 작가는 감동 실화로 엮어 세상에 알렸다.

저자 델핀 미누이의 작가 정신은 훌륭하다. 시리아 내전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면서 처연한 현장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음을 찬양한다.

책 속, 실제 주인공들이 나눈 깊이 있는 대화는 우리들에게 인간으로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 물음이 묵직하게 와 닿는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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