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기 베어물며 어릴 적 향수와 함께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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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0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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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20코스(김녕-하도올레)/해녀불턱~월정마을 3.8㎞
투뮬러스 지형의 환해장성 자취.
투뮬러스 지형의 환해장성 자취.

 

# 환해장성과 투뮬러스
 

‘올레 20코스 3㎞ 지점’이라는 조그만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환해장성은 다시 이어진다.
 

다른 곳과 달리 비교적 낮은 높이로 보수했고, 이어진 곳도 그 수준이다. 무너지고 일부 성담은 사라졌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 더 정겹고 보기 좋다. 이곳이 바다로 길게 뻗친 암반이 있어 적이 쉽게 상륙할 수 있을 것을 예상해 쌓은 것이리라.
 
지질트레일 코스 안내판에는 이곳 20코스를 ‘투뮬러스’라 했다. 투뮬러스는 내부 용암이 굳은 상부표면을 밀어 올려 무덤처럼 부푼 형태를 말한다.
 
투뮬러스의 표면에는 용암이 부풀어 오를 때 갈라진 균열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투뮬러스 내부의 용암이 균열의 틈을 따라 밖으로 흘러나오면 이를 용암발가락이라 하며 용암발가락 밧줄구조가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바위 위를 걸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냥 지나쳤었는데, 이곳에서 확실히 인식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
 
해안도로 오른쪽으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란 간판을 내건 건물군이 있는데, 지금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구 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에너지의 효율적인 활용기술, 지속가능한 친환경 에너지기술, 청정에너지기술 등 다양한 에너지기술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정부 출연기관이다.
 
대전에 본원이 있고 이곳은 그 산하의 제주글로벌연구센터인데, 1995년 월령지역의 소형 육상풍력 성능시험 평가단지를 시작으로 2005년에는 월정지역에 중대형 풍력성능시험평가 및 육상 신재생에너지 실증단지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으며, 2011년에 이곳 김녕지역에 육·해상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원천기술 개발 및 통합 실증기지 구축을 목적으로 확장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곳 연구센터에서는 ‘G5 에너지기술 강국 도약을 위한 융복합 RD&B 허브’의 비전을 실행하고자 하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해양 염분차 발전, 풍력을 핵심으로 하는 육·해상에너지 융복합기술 연구개발, 통합실증플랫폼 구축, 글로벌 인력교류 및 양성, 지역사회와의 협력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 해안도로 유감
 
올레길을 따라 투뮬러스 해안으로 들어섰다가 다시 해안도로로 나와 걸으며 뒤로 보이는 연구센터 건물을 찍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파도가 몸을 덮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까지 바다 곁으로 바짝 도로를 뽑을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바다의 일부가 육지 쪽으로 뻗쳤다고 하지만 해안도로는 최대한으로 바다와 떨어지도록 하여 아름다운 해안 경관은 잘 보전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좋은 예가 애월리 한담동과 곽지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해변길이다.
 
바다를 가까이서 느낄 사람만 찾아가 걸어도 보고, 바닷물을 만지다가 보말도 줍고, 바위에 올라 주변 경관도 즐길 수 있는 그런 길…. 조금은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놓고 가서 잠시 걸으며 숨 쉬고 싶은 바다 내음과 신선한 공기로 가득한 길 말이다.
 
1984년 소년체전을 앞두고 도두에서 어영을 거쳐 용두암을 잇는 4.2㎞의 해안도로를 냈을 때는 기존 도로를 대부분 활용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관광이라는 명분으로 이곳저곳에 무질서하게 빼놓은 해안도로는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실정임에도 무엇을 잃는지도 모르고 해안도로를 전부 이어 환상도로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제발 정신 차리라’고 한 마디 하고 싶다.
모래동산으로 이어진 길.
모래동산으로 이어진 길.

 

# 모래동산의 까마귀쪽나무
 
얼마 없어 올레길은 해안도로를 버리고 남쪽 모래언덕 사이로 이어진다. 덕분에 새콤한 산딸기를 한 줌 따서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아련한 추억과 함께 갈증이 사라지고 다시 걸을 힘을 얻는다. 바다 속 어디에 이렇게 많은 모래를 감추었다가 어느 세월에 이곳으로 옮겼는지 위대한 자연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밭마다 모래가 가득하고 모래언덕도 이곳저곳에 나타난다. 이곳 모래에 잘 자라는 나무는 거친 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까마귀쪽나무다.
 
제주에서는 ‘구룸비낭’ 또는 ‘구룸페기’ 등으로 불린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까맣게 익은 열매를 따먹기도 했다.
 
과거 민간요법으로 관절에 좋다던 이 나무의 열매가 요즘 들어 방송을 타면서 다시 각광을 받고 있으나, 아무렇게나 먹을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
 
# 당처물동굴을 생각하며
 
조금 더 간 곳 5.7㎞ 지점에 ‘당처물동굴 뒷길’이라는 조그만 팻말이 나타난다.
 
‘당처물동굴’이라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하나가 아닌가.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하긴 옆에 있어 봐야 관람이 허용되지 않아 들어갈 수 없는 동굴이다.
 
당처물동굴은 1995년 7월 10일 농경지 정리 작업 도중 중장비에 의해 동굴 벽이 무너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지면 약 3m 아래에 위치한 길이 110m, 높이 1.5~2.5m, 면적 857㎡ 규모의 작은 동굴이다.
 
원래 용암동굴이지만 지표에 쌓인 모래의 석회성분 등에 의해 만들어진 2차 생성물인 석주와 석순, 동굴산호 등이 다양하게 발달되어 석회동굴의 특징도 드러난다.
 
이런 독특한 형태로 인해 학술적 가치가 높아 1996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84호로 지정된 후, 제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의 일부로 등재된 것이다. 언제 어떤 형태로든 한 번 볼 수 있게 되기를 꿈꾸며 월정리 마을로 들어섰는데, ‘하수종말처리장 증설 결사반대’ 현수막이 가슴을 친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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